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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장에서 목도한 실상은 ‘완전고용의 역설’이 만들어낸 심각한 구인난이었다. 현지 정부와 직업기관 및 협회는 물론 한국 공장들과 인근 기술학교 및 대학들을 방문 조사하며 인터뷰를 가졌다. 현장의 공통된 일성은 ‘일할 생산 인력을 구할 수 없다’라는 절박함이었다. 우수한 인력은 활발한 노동 이동성을 활용해 조건이 더 나은 인접국으로 떠나고 있었다. 현지 숙련 인력 고갈로 우리 기업들은 필리핀, 슬로바키아 등 역외 외국 인력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반면 서유럽 전통 제조국들의 해외 진출 방식은 매우 치밀하다. 부지를 선정하기 전 공장 인근 기술학교와 대학부터 찾는다. 현지 학교 대다수가 참여하는 ‘듀얼 프로그램’(Dual System, 일·학습 병행제)을 활용해 맞춤형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채용 연계를 스케줄링한다. 학교 단계부터 인재를 선제 확보해 숙련 기술자로 양성하는 ‘인재 생태계’(Human ecosystem)를 구축한 뒤 비로소 공장을 짓는 즉 ‘사람이 준비돼야 설비도 제 기능을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접근이 체화돼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신규 투자 기업이 인근 학교와 손잡는 것은 단순한 인재 확보 그 이상이다. 현지 주민, 학부모들과 지역 축제를 함께하며 기업의 비전과 가치를 알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깊은 신뢰를 쌓는다. 이처럼 지역사회에 기술 교육과 든든한 일자리를 제공하며 함께 성장해 온 기업이 뜻밖의 위기에 처한다면 주민과 지역사회는 ‘확실한 우군’이 돼 닥친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 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기업들의 우선순위는 거꾸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공장부터 건설하고 이후 장비를 세팅해 나가며 사람을 구하기 시작한다. 국내에서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노동 이동성이 높고 법과 제도가 다른 해외 시장에서는 이러한 ‘속도전’이 독이 된다. 준비 없는 채용은 숙련도 부족과 생산 품질 저하로 이어져 경쟁력에 치명적인 리스크가 된다.
이번 출장에서 해외 진출 우리 기업을 도울 구체적인 방향을 발견한 점은 큰 성과다.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드웨어 중심 투자를 넘어 인적자원(HR) 전략을 해외 진출의 최우선 핵심 요소(Critical Factor)’로 올려놓아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인력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현지 정부 및 지역 교육기관과 연계한 ‘K-듀얼 트랙’을 개설하고 채용과 연계해 우수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선진 직업훈련 노하우와 자격 체계를 현지와 접목해 현지인과 역외 외국인 근로자의 숙련도를 조기에 끌어올리는 인적자원개발(HRD)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진출 대기업과 협력사, 현지 정부 기관이 함께하는 ‘민관협력 HRD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한다.
공장을 짓는 것은 돈과 기술이지만 그 공장을 돌리고 품질을 결정하며 위기를 이겨내는 힘은 결국 ‘사람’과 ‘지역사회의 신뢰’에서 나온다. 해외 공장 건설의 첫 삽은 포크레인이 아닌 현지 교육기관, 지역 정부와의 HR 협력 협약서(MOU)에서 시작돼야 한다. 준비된 인재 생태계와 신뢰 위에 세워진 공장만이 세계 시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진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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