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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무극화 시대, 외교의 힘은 산업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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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기자I 2026.09.30 06: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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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준기 매크로에디터 겸 정치부장] “다극화를 넘어선 무극화 시대.”

우리는 어쩌면 ‘미국 외교안보전략의 구루’ 리처드 하스 전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이 오래전부터 설명해온 무극화 시대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여러 개의 힘이 존재하는 다극화를 넘어, 국제질서를 압도적으로 조정하는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데스크의눈]무극화 시대, 외교의 힘은 산업경쟁력
韓에 만만찮은 도전

이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은 이런 국제질서의 변화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관세와 무역갈등의 확전을 피하고자 휴전을 연장하고 필요한 분야에서는 협력하기로 했지만, 희토류·첨단기술·대만 문제 등 핵심 갈등의 구조적 해법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즉 세계의 두 강대국임에도 정작 양 정상이 합의한 건 질서의 재편이 아니라 갈등의 관리에 머물렀던 것이다.

과거 냉전 시대에는 미국·소련 두 진영이 세계를 양분했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압도적인 힘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했지만, 지금은 중국이 경제·군사·기술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할 만큼 성장했고, 유럽·일본·중동 국가들도 각자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강대국이 더 많아짐에 따른 다극화를 넘어 그 강대국들조차 세계 전체의 규칙을 혼자 정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이는 한국에는 만만치 않은 도전일 수밖에 없다. 지난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외교에서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하지만 중국과의 관계 관리도 중요하다”고 밝힌 것도 이런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외교의 목표가 국익, 즉 국가발전과 민생개선이라며 우리의 주력 무기인 수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미국과 안보동맹을 맺고 있고 중국과는 여전히 중요한 경제 파트너 관계다. 동시에 반도체·AI·조선·원전·방산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은 미·중 경쟁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와 안보가 따로 움직이기 어려운 지금, 어느 한쪽과의 관계만으로 모든 국익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기업 선택지 늘리려면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인도·아세안·유럽·중동 등으로 시장과 생산거점을 다변화하는 한편, 반도체·AI·조선·원전·방산·배터리 등 다른 나라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경쟁력 역시 특정 품목 하나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지금은 한국의 메모리를 빼놓고 AI 동맹을 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공식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는 건 오만이다. 당장 조선·원전·방산·배터리·바이오 등으로 저변을 확대해 외교적 지렛대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기업이 여러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외교의 공간을 넓히고, 핵심광물·에너지·공급망 협력을 외교 의제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기업의 투자와 기술개발을 가로막는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결국 기업은 외교의 카드를 만들고, 정부는 그 카드를 더 많이 쓸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세계가 한국을 빼놓고는 공급망, 더 나아가 안보까지 설계하기 어렵게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무극화 시대 한국 외교의 힘은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느냐보다, 세계가 우리를 얼마나 필요로 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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