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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온체인 금융, 시장 열린 뒤 준비하면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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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길 기자I 2026.09.27 0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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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운영체제가 바뀐다③
박도현 가천대 교수·파이랩테크놀로지 대표

[박도현 가천대 금융수학과 교수·파이랩테크놀로지 대표] 앞선 두 글에서 금융의 운영체제가 온체인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정부는 새로운 금융을 안전하게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마지막 질문은 금융회사에 돌아간다. 증권사들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나는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5년 뒤 온체인 금융에서 우리 회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그 다음 그 역할에 필요한 사람과 기술, 기존 금융과 온체인을 연결하는 능력을 회사 안에 쌓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다. 작은 것이라도 실제 거래를 계속 해봐야 한다. 온체인 금융은 규제가 완성된 뒤 IT회사에 시스템 하나 발주한다고 몇 달 만에 만들 수 있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금융회사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로빈후드는 8년에 걸쳐 플랫폼을 만들었다.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로빈후드다. 지금의 로빈후드를 보면 주식 토큰과 자체 블록체인을 한꺼번에 만들어낸 회사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8년에 걸쳐 한 층씩 쌓았다.

출발은 2018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거래였다. 이후 고객이 가상자산을 외부로 보내고 받을 수 있게 했고, 자기수탁형 웹3 지갑을 만들었다. 단순히 앱 안에서 코인 가격을 사고파는 데서 벗어나 고객을 실제 블록체인과 연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음은 해외시장과 인프라였다. 글로벌 서비스를 확대하고 2025년에는 비트스탬프(Bitstamp)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50개가 넘는 글로벌 라이선스와 등록, 기관고객, 유동성, 거래 인프라를 확보했다.

그리고 나서야 주식이 등장했다. 2025년 유럽에서 미국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에 연동된 주식 토큰을 내놓았고, 실물자산 토큰화를 위한 자체 블록체인 로빈후드 체인을 발표했다. 2026년 2월 테스트넷을 열었고 7월에는 메인넷을 가동했다. 현재 주식 토큰은 120개가 넘는 국가의 적격 이용자에게 제공되고, 지갑에 직접 보유하면서 거래하거나 대출·담보 같은 다른 온체인 서비스와 연결할 수 있도록 확장되고 있다. 시간 순서로 보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거래에서 시작해 지갑을 만들고, 글로벌 규제와 기관 인프라를 확보하고, 그 위에 주식 토큰을 올리고, 마지막에는 자체 금융 네트워크까지 만들었다. 8년이 걸렸다. 물론 로빈후드가 2018년부터 지금의 모습을 모두 설계했다고 볼 수는 없다.

(사진=제미나이)
(사진=제미나이)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그 과정에서 거래, 청산, 지갑, 수탁, 규제 대응, 유동성, 해외사업과 블록체인 개발이라는 경험이 계속 회사 안에 쌓였다는 점이다. 온체인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결국 시스템 자체보다 그 시스템을 만들어 본 경험일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금융의 뒤편부터 바꿨다. 골드만삭스는 전혀 다른 길을 갔다. 개인 투자자가 아니라 기관금융에서 시작했다. 2021년 유럽투자은행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채권 발행에 참여한 뒤 자체 플랫폼 GS DAP을 만들었다. 2022년에는 GS DAP을 이용해 1억유로 규모의 디지털채권을 실제 발행하고 결제했다. 결제는 T+0, 즉 당일에 이뤄졌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러 국가에서 디지털채권 거래 경험을 쌓은 뒤 2025년에는 BNY와 함께 기존 머니마켓펀드(MMF) 지분을 GS DAP에서 토큰 형태로 표시하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블랙록, 피델리티,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등이 초기 참여자로 들어왔다. 목표는 단순히 MMF를 디지털화하는 것이 아니다. MMF를 더 쉽게 이전하고, 궁극적으로 담보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만들어온 것은 기관들이 사용할 새로운 금융시장 인프라다.

블랙록은 가장 잘하는 상품부터 옮겼다. 블랙록의 방법은 또 다르다. 자체 블록체인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답게 자신이 가장 잘하는 금융상품부터 온체인으로 가져왔다. 2024년 미국 국채와 현금성 자산에 투자하는 토큰화 펀드 BUIDL을 출시했다. 1년 뒤 운용규모가 10억달러를 넘어섰고, 여러 블록체인으로 범위를 넓혔다.

더 중요한 변화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BUIDL을 크립토닷컴, 데리비트, 바이낸스 등에서 거래 담보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여기서 토큰화의 의미가 달라진다. 펀드를 단순히 블록체인 위에 올려놓은 것이 아니다. 다른 금융거래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금융 부품으로 만든 것이다. 최근 블랙록은 기존 MMF에도 토큰화된 클래스(share class)를 확대하고 있다. 토큰화가 별도의 실험상품에서 기존 금융상품의 새로운 유통방식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로빈후드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골드만삭스는 시장 인프라를 만들었다. 블랙록은 금융상품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답이다. 그러나 공통점도 분명하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곳에서 시작했고, 작은 실거래를 계속하면서 범위를 넓혔다.

그렇다면 우리 증권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모든 증권사가 로빈후드처럼 자체 블록체인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어떤 회사는 좋은 자산을 발굴하고 상품으로 만드는 데 강할 수 있다. 어떤 회사는 기관 간 거래와 결제, 담보 관리에서 강할 수 있다. 또 다른 회사는 전 세계 온체인 자산을 국내 투자자에게 연결하는 유통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은 기술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온체인 금융의 가치사슬에서 어디를 차지할 것인가.”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그 다음 필요한 것은 조직이다. 온체인 금융은 IT 부서만의 일이 아니다. 증권 발행과 거래, 결제와 수탁, 지갑과 스마트컨트랙트, 자금세탁방지(AML), 고객확인(KYC), 법률과 세무, 리스크 관리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외부업체에 맡기는 방식으로는 이런 경험이 회사 안에 쌓이기 어렵다. 작더라도 계속 경험을 축적하는 상설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연결 능력이다. 기존 증권시스템이 갑자기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 상당 기간 기존 금융과 온체인 금융은 함께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객계좌와 원장, 주문과 결제, 배당과 세금,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새로운 온체인 자산과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어쩌면 앞으로 가장 가치 있는 기술은 새로운 블록체인을 하나 더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두 개의 금융을 연결하는 기술일 수 있다.

마지막은 실제 경험이다. MMF든 국채든 작은 자산 하나라도 직접 토큰화해 보고, 실제 투자자를 참여시키고, 돈을 결제하고, 다시 그 자산을 담보로 사용해 봐야 한다. 보고서와 기술검증(PoC)만 반복해서는 알 수 없는 문제들이 실제 거래에서는 나온다. 해외 금융회사들이 수년 동안 이런 작은 거래를 반복해 온 이유다.

한국도 이제 출발선에는 섰다. 한국의 대형 증권사들도 최근 움직임이 빨라졌다. 미래에셋은 가장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코빗을 인수해 디지털자산 거래 인프라를 확보했고, 미래에셋증권 미국법인은 DTCC의 토큰화 워킹그룹에 참여하고 있다. 회사는 향후 토큰증권, 실물자산(RWA), 스테이블코인, 커스터디와 디지털 결제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밝히고 있다.

한국투자증권도 올해 코인원 지분 약 20%를 확보했다. 동시에 채권과 MMF 등 기존 금융상품까지 포함하는 자체 토큰증권 발행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코인원·OKX·컴투스와의 협업을 통해 전통 금융과 블록체인 기술, 글로벌 거래 인프라를 연결하겠다는 그림도 제시했다.

한화투자증권도 상당히 적극적이다. 두나무 지분을 9.84%까지 늘렸고, 골드만삭스와 DTCC 등이 참여하는 캔톤 네트워크 운영사 디지털애셋에도 약 300억원을 투자했다. 시큐리타이즈 등 해외 토큰화 인프라 기업에도 투자하면서 ‘Global No.1 RWA Hub’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하면 방향 자체가 달라졌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이제 시작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움직임의 상당 부분은 아직 거래소 지분 투자, 해외 기술기업 투자, 플랫폼 구축, 제휴와 연구의 단계에 있다. 로빈후드처럼 고객과 온체인을 실제로 연결하고, 골드만삭스처럼 여러 국가에서 실거래를 반복하고, 블랙록처럼 토큰화된 상품이 다른 금융거래의 담보로 사용되는 단계와 비교하면 앞으로 쌓아야 할 경험이 훨씬 많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거래소 지분을 샀느냐가 아니다. 그 자산과 기술을 이용해 어떤 금융서비스를 실제로 만들어내느냐이다. 인수와 투자는 시작점이지 완성점이 아니다.

가장 비싼 선택은 기다리는 것일 수 있다. 증권회사 경영진에게 지금 온체인 금융은 어려운 투자일 수밖에 없다. 시장 규모는 아직 작다. 규제도 변하고 있다. 당장의 수익도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기 쉽다.

“시장이 확실해지면 그때 제대로 투자하자.”

합리적인 판단처럼 들린다. 하지만 온체인 금융에서는 오히려 이것이 가장 비싼 선택이 될 수 있다. 시장 규모가 충분히 커졌다는 것이 확인될 때는 글로벌 회사들이 만든 플랫폼과 기술표준, 커스터디와 유동성 네트워크가 이미 자리를 잡은 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때 한국 금융회사에 가장 빠른 방법은 간단하다. 외국 플랫폼을 가져다 쓰면 된다. 해외 블록체인에 접속하고, 해외 커스터디에 맡기고, 해외의 유동성과 결제망을 이용하면 된다.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세계 금융은 원래 서로 연결돼 있고 모든 기술을 국내에서 만들 필요도 없다.

문제는 무엇을 직접 만들고 무엇을 외부에서 가져올지 결정할 능력까지 잃는 경우다. 그때 치르는 비용은 단순한 시스템 사용료가 아니다. 상품은 어느 플랫폼의 규격에 맞춰야 하는지, 고객은 어디에서 거래해야 하는지, 데이터는 어디에 쌓이는지, 유동성은 누구의 네트워크로 모이는지까지 다른 회사가 만든 금융의 규칙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의 국산화가 아니다.

미래 금융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의 내재화다. 그 능력은 돈을 주고 몇 달 만에 살 수 없다. 로빈후드는 8년 동안 쌓았다. 골드만삭스도 작은 디지털채권 한 건에서 시작했다. 블랙록 역시 펀드 하나에서 시작해 담보와 글로벌 유통으로 넓혔다.

한국의 증권사들도 이제 출발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이 완전히 열린 뒤 시작해서는 늦을 수 있다. 지금 투자하지 않아 아끼는 비용보다 나중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치르게 될 기회비용이 훨씬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박도현 가천대 금융수학과 교수·파이랩테크놀로지 대표. △미국 미시간대 금융공학 박사 △한국투자증권·하나증권·미래에셋증권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2014년~) △파이랩테크놀로지 창업자 겸 대표(2017년~)
박도현 가천대 금융수학과 교수·파이랩테크놀로지 대표. △미국 미시간대 금융공학 박사 △한국투자증권·하나증권·미래에셋증권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2014년~) △파이랩테크놀로지 창업자 겸 대표(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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