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된다는데 한국은 어떠냐”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매번 같다. 지금 한국에서는 할 수 없다. 그 이유를 따라가 보면 한국의 토큰화 논의가 어디에 멈춰 있는지 드러난다.
먼저 근거법의 문제다. 디지털자산의 발행과 유통을 아우르는 기본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내년 2월 시행되는 것은 개정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이른바 토큰증권법뿐이다. 그런데 이 법이 다루는 대상은 오직 증권이다. 건물 그 자체가 아니라, 건물의 임대수익을 받을 권리를 수익증권이나 투자계약증권으로 구조화했을 때에만 토큰이 될 수 있다. 자산이 아니라 자산에 대한 증권을 토큰화 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한계는 그다음이다. 금·은 같은 원자재, 탄소배출권처럼 증권이 아닌 실물자산은 이 법의 사정거리 밖에 있다. 실물 금 토큰이 글로벌에서 이미 최대 자산군의 하나로 거래되는데도, 한국의 유일한 관련 법은 이 대표적 자산군을 처음부터 제외했다.
허용된 증권형마저 발밑이 불안하다. 토큰증권의 비정형증권은 투자계약증권과 비금전 신탁수익증권으로 나뉘는데, 지난 1월 개정으로 투자계약증권은 정비됐지만 신탁수익증권은 빠졌다. 증권사들이 구축한 토큰증권 플랫폼 상당수가 기반으로 삼는 구조가 정작 발행 근거를 갖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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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카사코리아는 신규 공모를 멈추고 자산 매각에 들어갔다. 또 다른 플랫폼 펀블은 자기자본 요건을 채우지 못해 지난 5월 문을 닫았다. 유통 인프라는 일정대로 갖춰지는데, 정작 올릴 상품의 근거만 국회에 남아 있다.
시야를 밖으로 돌리면 격차는 자산의 종류에만 있지 않다. 글로벌 시장의 질문은 이미 무엇을 토큰화할 것인가를 지나, 어떻게 담보로 움직이고 결제에 쓸 것인가로 넘어갔다.
이 변화는 세 장면으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 월가에서 가장 큰 블록체인 사업은 코인이 아니라 국채 담보를 원장 위에서 주고받는 레포 시장이다. 브로드리지의 분산원장 레포 플랫폼은 지난 6월 한 달간 7조5000억달러를 처리했고, 일평균 거래액은 전년 대비 68% 늘었다.
둘째, 시장 인프라의 심장부가 직접 움직였다. 미국 예탁결제기구 DTCC는 지난해 12월 보관 국채 일부를 토큰화하겠다고 발표하며 올해 하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셋째, 일본 청산기관 JSCC는 미즈호·노무라와 함께 지난 4월 일본국채를 담보로 실시간 이전하는 실증에 착수했다. 전통 금융의 가장 보수적인 인프라가 토큰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규모의 지표도 이 방향을 뒷받침한다. rwa.xyz 기준 스테이블코인을 제외한 온체인 토큰화 실물자산은 지난 8월 초 381억달러를 넘어섰고, 최대 카테고리는 부동산이나 미술품이 아니라 미국 국채로 약 162억달러다. 다만 절대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자산들이 실제로 얼마나 쓰이느냐다.
380억달러가 발행됐지만 담보로 활용되는 규모는 20억달러에 못 미친다는 분석이 있다. 대부분이 발행된 채 멈춰 있다는 뜻이다. 발행은 시작일 뿐, 토큰이 담보로 돌고 결제에 쓰이며 원장 사이를 오갈 수 있어야 토큰화가 약속한 효율이 실현된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급준비금과 상업은행 화폐, 국채를 하나의 통합원장에 올리는 것을 차세대 금융시스템의 다음 단계로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건물주의 질문으로 돌아오면, 답은 단순한 불가능이 아니다. 지금은 안 되지만 준비는 지금부터 해야 한다. 한화투자증권은 글로벌 최고의 RWA 허브를 표방하고 나섰다. 미래에셋을 비롯한 대형 증권사들도 실물자산 토큰화를 차세대 사업으로 준비하고 있다. 제도가 열리는 순간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쪽은 미리 증권사와 구조를 검토하고 자산을 정비해 둔 이들이다.
관건은 그 문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넓게 열 것인가다. 이는 개인이 아니라 입법의 몫이다. 발행의 법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토큰이 담보로 쓰이고 결제에 활용되며 원장 간에 나아가 국경을 넘어 이동하게 하는 설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내달 28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토큰증권(STO) 이후, 실물자산 토큰화(RWA) 입법과제 모색’ 세미나가 바로 이 질문을 다룬다. 다음 기고문에서는 그 첫 과제인 한국 법제의 현주소 특히 하위법령에 위임된 쟁점들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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