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구자겸 통신원]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하루로부터 평생이 그렇습니다. 그런 선택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실패와 성공, 어둠과 밝음, 그도 아니면 그것들이 뒤섞여 어중간한 회색 지대입니다 .
선택도 나이를 먹습니다. 그래서 고약한 게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끝내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부름이라는 죽음이 그 극단일 것입니다. 주체와 객체가 바뀌어 내가 아닌 선택이 나를 선택했을 때 그것은 피곤함이요, 고통입니다(순전히 비신자의 관점에서만 봤을 때입니다).
선동렬 삼성 감독이 1999년 주니치를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보스턴 레드삭스 입단이 이뤄질 뻔했다가 끝내 불발된 과정은 선수에게도 선택의 극단이 얼마나 비정한 것인가를 에누리없이 보여줍니다.
당시 만 37세를 눈앞에 두고 이미 일본 시리즈를 마치자마자 은퇴를 선언했던 선 감독에게 보스턴은 일본까지 스카우트 책임자를 보내는 성의를 보였으나 논-로스터 인바이티(Non-Roster Invitee)로 스프링캠프에 초청합니다. 스프링캠프에 들어와서 훈련하고 시범경기를 통해 기량을 확인한 후 정식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주니치의 재계약 오퍼도 사양하고 은퇴를 선언한 마당에 보장된 계약을 제의해 와도 웬만한 조건이 아니면 갈까 말까였던 선 감독은 미련 없이 거절합니다.
선 감독은 “마치 내가 어린애 취급을 당한 기분이었다”고 계약 결렬 후 소감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당해보지 않았던 객체로서의 선택을 맛본 쓰라림이기도 했습니다. 보스턴 스카우트 책임자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진정해(Take it easy)”라고 연신 말할 정도였으니 당사자의 심정이야 오죽 했겠습니까.
박찬호가 시즌 개막 직전 구단의 트리플 A 행을 받아들인 것을 두고 많은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언론 모두 최초 구단의 불펜행 방침에도 반발했던 그가 로스터에서조차 제외된다면 이를 거부하고 자유계약선수를 선언해 시장을 노크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박찬호가 풀타임 빅리거가 된 뒤 순전히 기량의 문제로는 처음인, 수모스러운 마이너리그 행을 받아들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우선 상황이 각 팀들이 개막전 로스터를 다 채운데다 5선발 체제도 완료해 비집고 들어가기가 무리입니다 . 아직 제 구위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간도 필요 했을 것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구단과의 교감일 듯 합니다. 메츠는 메이저리그 루키 연봉보다 불과 20만여 달러 많은 60만 달러만 지급해도 되는 박찬호를 요긴한 카드로 쓸 수 있습니다. 부상 투수가 많은 팀 마운드 형편상 언제든지 대체 요원(선발이든, 불펜이든)으로 활용이 가능하고 몸값이 싸 트레이드 카드로도 제격입니다. 메츠가 박찬호에게 트리플A 행을 통보하기 전 설득의 공을 들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입니다. 결국 박찬호와 메츠는 서로 충분히 주판알을 튕기고 나서야 ‘동거’에 들어간 셈입니다.
박찬호는 1994년 메이저리그 진출, 아니 그 이전부터 분명 ‘선택의 주체’였습니다. 공주고 시절부터 놀란 라이언을 흠모해 ‘그냥’ 하이 킥으로 던졌습니다. 청소년 대표로 다저스타디움서 열린 대회 땐 미국을 상대로 한 3경기에 마당쇠처럼 모두 등판했습니다(당시 동기생들인 임선동, 조성민 등은 연투를 꺼렸습니다). 이어 계약금 4천만 원을 제시한 연고 구단 한화를 뿌리치고 한양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해 이후 꾸준한 성장 가도를 달리면서 2000년 18승에 이어 자유계약선수 직전이었던 2001년 15승을 따낸 뒤 5년 6500만 달러의 대박을 터트립니다. 와중에 1999년 겨울 한국인 에이전트 스티브 김과 결별하고 스스로 ‘수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에게 선택은 늘 1인칭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박찬호는 선택의 객체로 전위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텍사스에서 부상과 부진을 거듭하다가 2005년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 됐습니다.
두 번째로 자유계약선수가 된 지난 겨울엔 계약에 전혀 진전이 없자 보라스를 해고시켰습니다. 형식은 자른 것이었지만 내용상으론 보라스에게 ‘팽’당한 것이었습니다. 방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에이전트가 각별히 모셔야 할 고객으로서 대접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찬호에게는 놀라운 게 있습니다. 바로 선택의 주체일 때나, 객체일 때나 영리한 상황 인식을 보여주고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고 해야 할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고 맙니다.
2001년 허리 통증을 참아 내면서 계속 던져 결국 자유계약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당해 연도 호성적을 챙긴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제2의 자유계약선수를 앞둔 지난해는 또 어땠습니까. 전반기 막판 소장 수술을 받아 모두들 시즌이 끝났다고 봤으나 끝내 복귀, 데뷔 첫 포스트시즌 마운드까지 밟았습니다.
이번 트리플 A 행 수락도 그의 영리한 상황 인식의 연장선상 입니다.
이제 문제는 박찬호의 선택이 한창 오름세 때처럼 과실로 이어지느냐,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느냐입니다. 그에 따라서 그의 선택도 집념이냐, 미련뿐인 집착이냐가 판가름 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