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지순례 '피자설기' 피자헛식 재해석 첫입은 피자 80%…쫀득한 도우 같아 아래로 갈수록 하얀 설기만 남아 심심 3900원에 맛본 재미…재구매는 고민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무엇이든 먹어보고 보고해 드립니다. 신제품뿐 아니라 다시 뜨는 제품도 좋습니다. 단순한 리뷰는 지양합니다. 왜 인기고, 왜 출시했는지 궁금증도 풀어드립니다. 껌부터 고급 식당 스테이크까지 가리지 않고 먹어볼 겁니다. 먹는 것이 있으면 어디든 갑니다. 제 월급을 사용하는 ‘내돈내산’ 후기입니다. <편집자주>
우유 설기 위에 페페로니와 치즈, 고기 토핑, 채소 등을 얹은 피자헛 ‘피자설기’. 겉모습은 작은 컵피자를 닮았다. (사진=한전진 기자)
피자집에서 떡을 샀다. 모처럼 피자를 포장하러 들른 피자헛에서 ‘피자설기’라는 낯선 이름을 발견해서다. 떡집에서 피자를 흉내 내더니 이제 피자집이 떡을 만드는 시대인가.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 찾은 매장에는 딱 하나가 남아 있었다. 벌써 입소문이 났는지 마지막 한 개를 주문하자 바로 품절됐다. 3900원을 더 내고, 피자 브랜드가 만든 떡이 어떤 맛일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한국피자헛이 지난 8일 출시한 ‘피자헛 피자설기’는 국내산 멥쌀과 우유로 만든 설기를 두 겹으로 쌓고 소스와 토핑을 올린 메뉴다. 토마토소스와 페페로니에 고다·프로볼로네·모짜렐라 등 세 가지 치즈를 조합했다. 최근 SNS 입소문을 타며 ‘떡지순례’의 인기 메뉴로 떠오른 피자설기를 재해석했다. 전국 매장과 공식 온라인 채널, 주요 배달앱에서 주문할 수 있다.
은박 컵에 담긴 제품은 컵케이크 정도 크기였다. 한 주먹쯤 되는 양으로, 3900원이라는 가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인상이었다. 표면에는 페페로니와 고기 토핑, 피망, 올리브, 치즈 등이 올라가 있었다. 겉만 보면 작은 컵피자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하얀 떡은 토핑 아래 숨어 있었다. 함께 먹는 사람과 “이게 정말 떡이라고?” 하며 들여다보는 것부터 이 메뉴를 고른 재미였다.
피자헛 ‘피자설기’를 토핑과 함께 떠낸 모습(왼쪽)과 핫소스를 묻혀 먹어본 모습(오른쪽). (사진=한전진 기자)
포크로 위쪽을 떠내자 치즈와 토핑에 설기 일부가 딸려 올라왔다. 첫입은 의외로 낯설지 않았다. 익숙한 피자 소스와 치즈 맛이 먼저 느껴졌고, 떡은 쫀득한 도우처럼 받쳐줬다. 맛의 80% 이상은 피자라는 느낌이었다. 설기(?)라고 해서 퍽퍽한 떡을 예상했지만, 갓 쪄낸 듯 포슬포슬하면서 씹을수록 쫀득했다. 피자와 떡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다소 아쉬운 건 아래쪽이었다. 토핑이 줄고 하얀 설기가 드러나면서 맛도 조금씩 심심해졌다. 설기만 먹으면 단맛이 강하지 않고 담백한 쌀떡 맛이 났다. 떡 자체가 맛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소스와 치즈, 고기 토핑의 강한 맛이 사라지니 상대적으로 허전했다. 위에서는 피자를 먹다가 아래에서는 떡을 먹는 느낌. 첫입의 조합을 끝까지 유지하기에는 토핑과 설기의 균형이 아쉬웠다.
남은 설기에는 핫소스를 묻혀봤다. 크게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으로 맛이 확 살아나지는 않았다. 갈릭 등 디핑소스를 곁들이니 소스 맛이 배면서 한결 먹을 만해졌다. 피자 가장자리 도우를 소스에 찍어 먹는 것과 비슷하되 좀 더 쫀득한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위의 토핑과 아래의 떡을 함께 떠먹거나, 소스를 곁들여 먹는 편이 마지막까지 덜 심심했다.
피자헛 ‘피자설기’의 단면. 피자 토핑 아래 두 겹으로 쌓인 하얀 설기가 드러나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양은 피자나 파스타에 곁들이기에 적당했다. 3900원으로 낯선 조합을 경험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웠고, 한 번쯤 먹어볼 만했다. 다만 다음에도 주문할지는 조금 망설여졌다. 같은 돈을 피자 옵션에 보태거나 다른 사이드 메뉴에 쓰고 싶은 이들도 많을 것 같았다.
익숙한 피자 브랜드에 다시 호기심을 갖게 했다는 점은 반갑다. 특히 이는 냉동피자와 저가 브랜드 사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피자 전문점에 꼭 필요한 시도다. 유행을 빠르게 옮겨온 타이밍도 좋았다. 늘 보던 메뉴판에 ‘이건 무슨 맛일까’ 싶은 선택지가 생긴 셈이다. 피자 전문점의 조리와 토핑 역량을 살린 메뉴가 이어진다면, 신제품이 궁금해 주문하는 재미도 커질 것이다.
과거 햄버거의 빵을 밥으로 바꾼 라이스버거도 이제는 하나의 메뉴가 됐다. 피자 도우를 떡으로 바꾸는 상상이라고 컵 하나에 머물 이유는 없다. 언젠가는 떡을 도우로 쓴 피자 한 판을 배달시키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취향은 갈리겠지만, 피자집에서 떡을 고르게 될 줄도 몰랐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3900원짜리 호기심을 맛봤다. 다음에는 또 어떤 조합이 올라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