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시장의 관심은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인상 여부에 쏠렸지만 워시 의장이 던진 메시지는 그보다 장기적이다. 제롬 파월 전 의장 시절 익숙해진 연준의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은행과 금융시장 간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구상을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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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시 의장은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정상적인 시기에 포워드 가이던스의 역할은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도입한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해서는 “환영받을 수 있는 기간을 넘어섰다(overstayed its welcome)”고 평가했다.
중앙은행이 미래의 정책 결정을 지나치게 공유하면 시장과 기업, 가계를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금리에 대한 사실상의 약속이 정책 결정자 스스로 향후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여지도 제약한다고 지적했다.
워시는 연준이 시장 참가자들의 ‘다음 거래’를 결정해주는 체제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장은 경제 정보를 자체적으로 분석해 성장과 고용, 물가에 대한 전망을 형성하고, 연준은 그렇게 형성된 국채금리와 환율, 신용여건, 원자재 가격 등의 시장 신호를 정책 판단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신호가 시장가격을 결정하고 중앙은행이 다시 그 가격을 보면서 정책을 결정하는 이른바 ‘거울의 방(hall-of-mirrors)’ 문제도 경계했다. 워시는 “시장이 연준의 가이던스에 크게 의존하고 연준이 시장가격에 의존한다면 새로운 상황을 보지 못하고 정책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금리 경로 감췄지만 ‘반응함수’는 명확히
그렇다고 워시 의장이 통화정책의 방향까지 모호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연설에서는 지난 7월 FOMC 기자회견보다 물가에 대한 판단과 정책 반응함수(경제 상황에 따라 중앙은행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보여주는 원칙)를 훨씬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워시는 연준의 물가안정 목표가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기준 2%라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이를 “확고하고 고정된 목표(firm, fixed target)”라고 규정했다. 또 연준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주된 정책수단은 단기 정책금리라고 명시했다.
현재 경제에 대한 판단에서도 물가에 무게를 실었다. 워시는 노동시장이 완전고용에 부합하는 반면 PCE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7%, 최근 6개월 기준 연율 4.1%로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연준의 주된 초점은 물가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조적인 인플레이션이 우리의 목표를 향해 명확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특정 회의의 금리 결정을 예고하지는 않았다. 워시는 연설을 마치면서 “나는 오늘 하나의 결정이 아니라 원칙에 전념하고 있다(I stand here today committed to a discipline, not to a decision)”고 선을 그었다.
결국 ‘9월에 금리를 올리겠다’는 식의 경로는 제시하지 않되 어떤 상황에서 연준이 움직일 것인지는 보다 명확하게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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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은 워시의 메시지를 매파적으로 받아들였다. 연설 이후 금리선물시장이 반영한 9월 금리인상 가능성은 전날 35% 수준에서 57% 안팎으로 뛰었다. 정책금리에 민감한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11.8bp(베이시스포인트, 1bp=0.01%포인트) 상승한 4.348%를 기록했다.
그러나 워시가 9월 인상을 사실상 예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7월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한 이유에 대해 공급망과 투자 흐름, 지정학적 상황 등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미리 정해진 금리 경로보다는 그때그때 들어오는 정보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9월 FOMC까지 발표될 고용과 물가 지표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노동시장이 완전고용에 부합하는 흐름을 유지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될 경우 금리인상의 명분은 강해질 수 있다. 반대로 고용이 빠르게 둔화하거나 물가가 예상보다 뚜렷하게 진정된다면 동결 가능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
워시가 연준의 가이던스를 줄일수록 개별 경제지표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과거처럼 연준이 몇 달 앞의 금리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시장 참가자들은 새로 발표되는 데이터 하나하나를 통해 연준의 다음 결정을 다시 추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워시가 원하는 시장의 가격발견 기능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워시는 자신이 지향하는 연준을 “더 조용하지만 소통에는 더 목적의식이 있는 연준(a quieter Fed, more purposeful in its communications)”이라고 표현했다. 연준이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신뢰를 얻는 게 아니라 물가안정이라는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잭슨홀 연설은 워시가 특정 금리 경로보다 정책 원칙을 앞세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고 해석된다. 시장이 앞으로 읽어야 할 것은 연준 의장의 다음 금리 힌트가 아니라 물가와 고용, 금융시장 신호가 워시의 정책 판단을 어느 방향으로 이끄느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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