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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예술을 세세히 구분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세상의 희로애락과 함께하는 혹은 그 감정의 복잡함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작품들은 모체가 같다. 주제가 사랑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술이든 연극이든 영화든, 사랑에는 감히 형식 따위로 뽑아낼 수 없는 깊은 뿌리가 있다. 이 전시가 그렇게 말한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러브 액추얼리’ 전이다.
사랑을 다룬 예술이 본래 한 가지란 것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그중에서도 영화와 미술을 접목시켰다. 영화의 정서를 미술에 투영한 시도다. 사랑의 주제를 6가지 갈래로 나누고 미술작품을 통해 다른 해석을 내려보자고 했다. 사랑의 처음부터 끝나고 난 후까지 ‘사랑의 시작’ ‘소년 소녀의 사랑’ ‘영원한 사랑’ ‘육체적인 사랑’ ‘집착과 소유로 일그러진 사랑’ ‘사랑이 끝난 후’로 구분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시선을 잡는 건 어두운 벽면에 투사된 글귀다.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의 대사들이다. 그 곁엔 마치 영화가 빚어낸 듯한 그림과 필름, 조형과 조각 등이 놓여 있다. 23편의 영화와 32점의 미술품이 그렇게 만났다.
▲사랑, 그 시작
“밖이 21도인데도 춥다는 당신을, 샌드위치 주문에도 한 시간씩 걸리는 당신을, 날 볼 때 미친 놈 보듯 인상 쓰는 당신을 사랑해!”(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윤가림의 조형 ‘부트와 새들’이 해리와 샐리 옆에 섰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두 개의 자전거 안장은 이제 막 시작된 사랑을 보여준다. 이를 지나면 구현모의 비디오 ‘러브’가 스친다. 그 옆을 채우는 영화대사는 이것이다. “첫사랑이 잘 안되니까 첫사랑이지 잘되면 그게 마지막사랑이지 첫사랑이냐”(영화 ‘건축학개론’). 로버트 앤디애나의 조각 ‘0∼9’, 이상선의 그림 ‘야! 날으는 들꽃’은 영화 ‘마이 걸’ ‘아홉살 인생’과 나란히 놓였다. 첫사랑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소년·소녀의 순수함이란 얘기다.
▲유혹과 소유, 집착과 파멸
그러나 순연해서 투명하기까지 했던 사랑의 색이 점차 진해진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고 욕정에 빠지며 소유에 갇혀 힘들어 한다. “그대의 영혼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영화 ‘더 리더’)는 고상우의 디지털프린트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천경자의 그림 ‘팬지’로 다시 살아났다. 화려하고 강렬하다. 하지만 이내 고통스러워진다. 집착이 시작되면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미친 사랑의 노래로 변질된다. 고명근의 필름 ‘스톤바디’, 김성진의 그림 ‘릴렉스’, 최욱경의 그림 ‘무제’ 등이 이 고약한 사랑을 위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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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과 공허…이젠 어디에도 없다
사랑이 끝나면 세상이 끝난다. 그렇게 믿는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영화 ‘화양연화’)는 정보영의 그림 ‘라이 원 어펀 어나더’와 결합했다. 그런데 이 끝난 사랑에 진짜 나비를 붙인 분홍색 하트 그림이 등장한다. 역설적인 이 작품은 데미안 허스트의 ‘무제’다. 박제된 사랑의 회한과 공허란 의미다. 박승훈의 디지털프린트 ‘텍스터스’를 불러들인 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난 언제까지나 잊지 못하고 있다”(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다. 서로 다른 사랑의 기억은 씨줄과 날줄로 엮인 파편화된 이미지란 뜻일 게다.
전시를 위해 서울미술관 6명 큐레이터들이 섹션별 영화와 작품을 고르고 영화 대사들까지 직접 뽑아내는 열정을 보였다. 이주헌 서울미술관 관장은 “미술작품도 사랑에 빠진 것처럼 바라봐야 풍요로운 감상을 할 수 있다”며 “영화를 감상하듯 미술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고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6월16일까지다. 02-39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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