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후속협상이 덜컹거리고 있다. 핵심은 3500억달러다. 미국은 직접 지분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통화스와프 배수진을 치고 방어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자극하는 말도 들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아시다시피 한국에서는 3500억달러를 받는다”며 “이것은 선불(upfront)”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내 친명계 원내외 인사 모임인 더민주혁신회의는 27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정도가 있다”며 “무도한 관세 협상으로 국민주권을 훼손하는 미국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먼저 미국의 압박이 지나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일본, 유럽연합(EU)과 다르다. 이들은 금융위기가 와도 자국 통화를 찍어서 대처할 수 있다. 한국은 비기축통화국이다. 달러가 고갈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외환위기 때 신물나게 겪었다. 3500억달러는 한국 외환보유액의 80%가 넘는다.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달러 고갈에 대비한 방어장치다. 미국이 우리 요구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
그렇다고 미국에 대해 감정 섞인 반응을 보이는 건 적절치 않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든가 ‘무도한’이란 표현은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우려가 충분하다. 우리 협상팀은 영국의 전략에서 배워야 한다. 영국은 지난 5월 일찌감치 관세협상을 타결지었다. 6월 캐나다 G7 정상회의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서류를 떨어뜨리자 키어 스타머 총리가 얼른 허리를 굽혀 그 서류를 집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이달 중순엔 찰스 3세 국왕이 트럼프를 국빈으로 초청해 ‘왕’처럼 융숭하게 대접했다.
영국은 남한테 굽실거릴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몸을 숙이는 실용외교를 펼치고 있다. 대미 협상에서 우리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국익에 보탬이 된다면 몸을 굽힐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지금 기업들은 끙끙 앓고 있다. 늦어도 10월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선 후속협상 타결 소식이 나와야 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주 “대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협상팀이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신선한 대안으로 실타래를 풀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