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절을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는 시장 참여자들은 11년 전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늘어나는 국가 빚(대외채무)과 줄어드는 비상금(외환보유액) 등 나라의 대차대조표도 당시와 비슷한 모양새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 모자라는 외화자금을 채워넣어야 했던 것과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 환율↑ 금리↑ 주가↓.."그 때와 비슷하다"
실제로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은 11년 전 `그 때`와 매우 비슷하다. 환율과 금리는 치솟고, 주가는 연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일 코스피는 전거래일 대비 7.29포인트(0.52%) 하락하며 1년반만에 최저로 뚝 떨어졌다. 60포인트 가까이 급락한 전날보다 낙폭은 줄었지만, 장중 한때 1400선을 깨고 내려가는 등 불안심리가 여전했다.
금리는 이달 들어 이틀 연속 급등세다. 이틀새 오른 금리만 20bp(1bp=0.2%p)에 달한다. 국고 5년 금리는 한달 반만에 6%대로 올라섰다.
달러-원 환율은 그야말로 폭등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하룻새 27원 뛰었던 환율은 2일에도 18원 오르며 1130원선을 훌쩍 넘겼다.
|
주가와 채권가격, 원화가치가 동시에 곤두박칠치면서 97년 IMF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을 다시 맞게 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안 그래도 이 달에 외국인의 국내채권 만기가 집중돼 있어, 이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갈 가능성을 우려하던 시장은 위기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며 불안에 떨었다. 불안이 손절을 부르고 손절이 가격을 더 끌어내리는 악순환, 그야말로 패닉 장세의 연속이다.
◇ 외국인 채권만기 67억불.."한꺼번에 나간다면?"
`위기설`의 단초는 9월에 집중돼 있는 외국인의 국내 채권 만기였다. 외국인이 들고 있는 국내 채권을 한꺼번에 던지면서 환율과 금리가 폭등할 것이라는 불안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
외국인의 국내 보유채권 가운데 올 9월중 만기를 맞는 금액은 84억달러로 사상 최대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5월말 기준). 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중도환매됐고, 현재 만기물량은 67억달러로 집계되고 있다.
국내 채권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일시에 매도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불안심리를 부추겨 시장에 지속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양진모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5% 내외에 불과하다"며 "최근 들어 외국인이 재정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확대된 만큼 외국인은 만기도래 채권을 빼가기 보다는 재투자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정범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이 일시에 채권을 만기상환하더라도 한국은행의 스왑시장 개입에 의해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는 규모"라면서도 "외환시장 충격은 불가피하며 환율 상승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경우 통화정책 방향도 제약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외채 늘고 외환보유고 줄고..외국자금 이탈 가속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하는 것은 외환위기 때만큼 불어난 외채와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외환보유액이다. 외국에서 빌린 돈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데 이를 갚을 수 있는 비상금 잔고가 자꾸만 줄어들고 있어 불안심리를 가중시키고 있다.
|
6월말 기준 우리나라의 총 외채는 4198억달러로, 작년말에 비해 376억달러(10%)나 급증했다. 만기 1년내 장기외채와 단기외채를 합한 유동외채 비율은 86%로 뛰어오르며 지난 99년(89%)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반면 외환보유액은 지난 4월 이후 다섯달 연속 감소세다. 무엇보다 당국이 환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달러를 내다파는 개입을 계속하면서 외환보유액 규모 감소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8월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2432억달러로, 작년 4월 이후 1년여만에 2500억달러에 못 미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의 상황이 외환위기 때와 비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채가 늘고 외환보유액이 줄면서 우리나라를 믿지 못하는 시각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시장 이탈이 가속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외국인은 지난 7월 한달에만 97억달러에 육박하는 국내 증권(주식+채권)을 팔아치웠다. 신용경색 확산 이후 이머징 마켓 투자비중을 낮추려는 외국인에게, 외채가 늘고 외환보유고가 줄어드는 한국은 1순위 이탈지역이 됐다.
각종 가격변수가 출렁이고 외국 자금의 국내 시장 이탈이 계속되면서 `9월 위기설`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라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문제 없다`며 진화하려는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안심리는 심리를 넘어 행동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원화 약세와 외환보유고 감소 등을 지적하며 "한국이 본격적인 외환위기를 향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뒤이어 당국의 강력한 항의와 오보논란이 불거졌지만, 97년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한달전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을 보도했던 블룸버그 사례와 너무 유사하다.
국내 시장참여자들 역시 "각종 수치들을 놓고 보면 IMF 때와 다를 바가 없다"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