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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카페]연구소는 더 이상 건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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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기자I 2026.11.06 05: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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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카페]연구소는 더 이상 건물이 아니다
[유용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국가과학AI연구센터장] 연구소라고 하면 대개 넓은 부지와 큰 건물이 떠오른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처럼 값비싼 장비와 수많은 연구자가 한 곳에 모인 풍경이다. 과학은 오랫동안 모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연구자들은 장비가 있는 곳으로, 동료가 있는 곳으로, 경험 많은 선배가 있는 곳으로 모였다. 이유는 분명했다. 실험 장비는 비싸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문헌을 찾고 실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코드를 짜는 일을 나눠 맡을 동료가 필요했다. 글로 남기기 어려운 노하우도 같은 공간에서 어깨너머로 전해졌다.

인공지능(AI)이 이 전제를 흔들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이제 논문을 찾아 읽고 가설을 세우고 코드를 짜고 결과를 분석한다. 구글 딥마인드는 여러 AI가 가설을 내고 서로 토론하며 다듬는 연구 도우미를 올해 개인 연구자에게 열기 시작했다. 일본 사카나 AI가 개발한 ‘AI 과학자’는 스스로 작성한 논문으로 국제 학회 워크숍의 심사를 통과했다. 올해에는 이 시스템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한 연구가 네이처에 실렸다.

실험실도 바뀌고 있다. 로봇이 밤새 실험을 돌리고 AI가 결과를 보며 다음 실험을 고르는 ‘자율 실험실’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 버클리의 한 자율 실험실에서는 밤중에 문제가 생기면 대학원생이 집에서 알림을 받고 카메라로 상황을 살핀다. 전 세계 과학자가 온라인으로 실험을 맡기는 ‘클라우드 실험실’도 등장했다. 미국의 신약 개발 기업 리커전은 자동화된 실험실에서 일주일에 최대 220만 건의 세포 실험을 수행한다.

이 흐름이 이어지면 연구소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2035년 어느 평범한 화요일을 그려 본다. 대학원생도, 갓 들어온 연구자도, 경험 많은 베테랑도 각자의 책상 앞에서 AI 연구원들과 함께 일한다. 문헌 조사와 계산은 AI가 밤사이 끝내 두고 실험은 멀리 있는 자율 실험실이 맡는다. 모여야 가능했던 연구가 어디서나 동시에 가능해진다.

연구소는 더 이상 건물이 아니다. 모든 과학자가 곧 하나의 연구소다. 연구자 한 명이 AI 연구원 10명, 100명과 함께 일하는 셈이다. 이 변화는 특히 사람이 부족한 곳에 기회다. 학생 연구원을 구하기 어려운 지방 연구실, 장비가 넉넉지 않은 작은 대학, 이제 막 독립한 젊은 연구자도 큰 연구소 못지않은 연구를 꿈꿀 수 있다. 지금까지 연구의 규모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장비를 모을 수 있느냐에 좌우됐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연구소를 얼마나 크게 짓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연구소의 역량을 제공하느냐가 중요해진다.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에서 이는 단순한 효율 향상이 아니라 연구 경쟁의 조건을 바꾸는 기회다.

물론 책상 위의 연구소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먼저 AI가 읽고 쓸 수 있는 연구 데이터가 필요하다. 실험 노트와 장비 기록이 연구실 서랍과 개인 컴퓨터에 흩어져 있으면 AI가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논문만이 아니라 데이터와 모델, 실패한 실험까지 함께 남겨야 다음 연구자와 AI가 이어서 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증이다. AI는 그럴듯한 결과를 빠르게 쏟아내지만 그것이 참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틀린 답을 자신 있게 내놓는 일도 아직 드물지 않다. 실험으로 확인하고 다른 연구자가 재현할 수 있도록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 지금보다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사람의 책임은 오히려 무거워진다. AI가 연구의 많은 과정을 수행하더라도 무엇을 탐구하고 어떤 결과를 믿을지 결정하는 최종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무엇을 물을지 고르고 AI가 내놓은 답을 의심하고 검증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책상 위 연구소의 소장은 결국 그 책상의 주인이다.

유튜브가 방송국 없이도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세상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었듯 과학에도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국가과학AI연구센터가 만들고자 하는 것도 그런 연구 환경이다. 데이터와 계산 자원, AI 연구원과 원격 실험실을 연결해 연구자가 어디에 있든 자신의 질문을 탐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데이터의 안전과 연구 결과의 검증은 그 출발점이다. 좋은 질문을 품은 사람이 있는 곳, 그곳이 곧 연구소가 되는 시대를 앞당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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