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영효기자] 1997년 외환위기는 첫번째 아시아의 기적을 무너뜨렸다. 이제 폭등하는 인플레이션이 두번째 아시아 지역의 성장 스토리를 희생시키려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2일 "치솟는 물가가 아시아 전역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최근의 인플레 압력을 지난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중대 사안으로 평가하며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들의 조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 亞 인플레, 97년 외환위기 파급력..중국 등 8개국 실질금리 `마이너스`
태국 바트화 가치 폭락에서 시작,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97년 외환위기는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세가 막을 내리게 한 금융위기. 이제 급등하는 물가가 2000년대 들어 호조를 띄던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 통신의 진단이다.
바클레이즈 싱가포르의 사이레쉬 자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를 억제할 구체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은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 스토리를 재고함과 동시에 이 지역의 시장 전망을 장밋빛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라며 "투자자 신뢰도가 약화되고 자산이 빠져나가면서 주식시장과 같은 자산가치가 심각한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 통신이 자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중국과 태국, 필리핀 등 최소 8개 아시아 국가들의 기준금리가 인플레 상승률보다 낮은 수준.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 상태라는 얘기다. 그만큼 물가상승세가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고 경기과열에 이은 버블 붕괴의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 중앙銀 오판이 한몫..베트남, 여유부리다 한번에 325bp 인상하기도
아시아 지역의 인플레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중앙은행들의 오판 때문. 당초 아시아 지역 중앙은행들은 미국과 유럽의 경기둔화로 인해 수요가 감소하면서 물가 또한 자연스레 진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HSBC 싱가포르의 로버트 프라이어 반데스포르데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정책 결정권자들은 글로벌 경기둔화가 인플레 압력을 낮출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통화정책이 믿을수 없을 만큼 느슨한 수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전세계적인 경기둔화가 일부 수요를 둔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상 최고 수준을 질주한 국제 상품 가격과 아시아 지역의 내수 증가가 수요 둔화를 대체하면서 스리랑카와 같은 나라의 경우 물가상승률이 26%를 넘어섰다.
최근 경제위기 가능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베트남은 정책 당국의 오판이 인플레를 야기한 대표적인 사례.
지난 2월 기준금리를 8.75%로 50베이시스포인트(bp) 인상한 베트남 중앙은행은 3월과 4월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했다. 금리가 물가를 억제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이 20%를 돌파하자 지난 5월 베트남 중앙은행은 부랴부랴 금리를 12.5%로 대폭(325bp) 인상했다.
◇ 중국發 쓰나미 몰려온다.."6월 CPI 상승률 10% 돌파할 수도"
가뜩이나 물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한차례 대규모 쓰나미가 불어닥칠 것이라는 전망은 아시아 지역의 인플레 우려를 더욱 높이고 있다.
세계 4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아시아 지역의 물가 급등을 주도할 진앙으로 지목되고 있다. 쓰촨성 대지진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모간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디 셰는 "지진 피해의 복구 비용이 1조위안(약 1440억달러)에 달해 이미 경기과열 우려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의 물가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행감독위원회(CBRC)는 지난달 21일 중국 은행권에 827억위안 규모의 피해복구비용 대출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소시에테 제네랄의 글렌 머과이어 아태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은행들에 복구비용 대출의 신속한 집행을 재촉하고 있기 때문에 이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10%를 넘어설 수 있다"고 진단했다.
◇ 亞 중앙銀, 금리인상 주저.."마지막 순간까지 아무것도 않으려 한다"
중국발(發) 인플레 쓰나미가 불어닥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들은 아직까지 금리를 인상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인민은행은 2008년 통화정책 기조를 10년 만에 `긴축(tight)`으로 수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연말 이후 인민은행은 기준금리인 1년 만기 대출금리를 7.47%로 묶어두고 있다. 지진 패해 복구와 해외 투기자본이 유입될 가능성(7.47%인 중국의 기준금리는 미국보다 547bp 높은 수준)을 우려해서다.
말레이시아의 기준금리는 2006년 4월 이래 변화가 없고, 필리핀의 금리 역시 2005년 10월 이후 동결 상태다. 태국 중앙은행은 오히려 지난해 7월 금리를 인하하기도 했다.
바클레이즈의 자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이와 리서치 연구소의 케빈 라이 선임 이코노미스트도 "중앙은행들의 강력한 조치가 없으면 결국 가격 폭등에 이은 조정에 직면할 것"이라며 "문제 해결이 지연되면 지연될 수록 위험은 커지고 고통은 길고 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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