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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는 왜 한국영화의 희망이 못 됐을까[정덕현의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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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기자I 2026.08.13 0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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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재미 극대화에도 관통하는 뼈대 없어
스파이더맨·오디세이 등 개봉하자 관객 급감
희망은 현실 잊게하는 도파민서 생기지 않아
그 현실에 공감해주는 정서적 연대 통해 가능

정덕현
[정덕현 문화평론가] 8월5일 현재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의 누적 관객수는 426만 명이다. 지난 7월15일 개봉 후 5일 만에 2백만 관객을 돌파했던 그 가속도는 서서히 줄어들다, 7월29일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가 개봉하면서 급감했다. 늦게 출발한 ‘스파이더맨’은 벌써 440만 관객을 동원하며 ‘호프’의 기세를 꺾어버렸다. 이제 8월5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의 등장으로 ‘호프’는 흥행 무대에서 물러나는 중이다. 한국 관객들이 유독 좋아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오디세이’라는 고전 그리고 무엇보다 극장에서 봐야만 할 것 같은 엄청난 스케일의 스펙터클이 기대감을 만들며 이 영화의 흥행은 이번 여름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입소문으로 지속적인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 틈에서 기세 좋게 시작했던 ‘호프’는 더 이상 한국영화의 ‘희망’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갖가지 호불호를 반영한 평가들을 떼놓고 보면 ‘호프’는 어디선가 봤던 장르물들의 극적인 재미들을 줄줄이 엮어 만든 영화다. 시작부터 어느 시골길에 쓰러져 즉사한 황소 앞에서 호포출장소 범석(황정민)의 시선으로 서스펜스를 서서히 끌어올린 영화는 괴생명체에 의해 초토화된 마을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끝까지 끌어올린 후 차를 몰고 총을 난사하며 등장한 성애(정호연)부터 총격전과 추격전의 스릴을 극점까지 끌어올린다. 난리가 난 마을에서 벗어나 괴생명체를 추적하는 사냥꾼들의 시선으로 숲에서 벌어지는 성기(조인성)의 사투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통째로 무너진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은 괴생명체의 공포감을 끌어 올린 후 그 충격적인 정체를 드러낸 그들과의 사투가 벌어진다. 말을 탄 성기가 괴생명체와 벌이는 대결은 서부극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고 말을 타고 달리는 성기와 차로 질주하는 범석이 함께 달리며 괴생명체를 제거하는 장면에서는 서부극과 스릴러에 SF가 겹쳐진 기막힌 자극으로 도파민을 폭발시킨다. ‘호프’는 바로 이 짜릿한 감각에 호소하는 작품이다. 마치 끝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도 겨를도 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그래서 그 롤러코스터에 별생각 없이 올라타고 그 다양한 장르적 재미들을 섞어놓은 영화를 그저 바라본 이들에게 156분의 시간 순삭 경험은 짜릿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재미들이 내 취향과 맞지 않거나(본래 장르라는 게 저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영화를 체험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할 여지를 주는 ‘예술적 경험’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보는 내내 ‘이게 뭔가’ 싶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우주까지 날아가는 서사에서, 신 대신 우주인이 등장해 막을 끝내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허탈함마저 느낄 수도 있다.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호프’는 잘 만든 영화지만 그 재미가 감각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호프’는 앙상한 작품이다. 보기 좋은 살은 있는데 이를 관통하고 지탱하는 뼈가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모든 영화가 뼈대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건 재미에 충실한 오락물일 수 있고 그 오락이 복잡한 세상에 지친 대중들에게 잠시 간의 휴식이 되어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 기승전결을 논리적으로 엮어 놓은 개연성이 절대적인 예술의 기준이 된다는 것도 너무 보수적인 시각일 수 있다. 요즘처럼 숏폼에 익숙해진 우리의 감각들은 ‘기승전’의 과정을 점점 기다리지 않는다. ‘결결결’로 이어져도 장르물에 익숙한 대중들은 그래서 알아서 이야기들을 연결해 재구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그렇게 감독이 하고픈 걸 끝까지 밀어붙여 만들 만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려 총제작비 600억(마케팅비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다)이 들어간 대작이다. 요즘처럼 극장이 어려운 시기에 이만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작품이 흔들린다면 그 파장이 영화계 전체로도 미칠 수 있다. 물론 600억의 제작비가 들만큼의 스케일을 가진 영화였다면 그것도 공감할 수 있지만 ‘호프’가 과연 그 정도의 스케일을 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호포시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이 영화에 600억을?

상업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한국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겨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입소문’이다. 완벽한 완성도나 충격적인 예술성 같은 것보다 중요한 게 그래서 당대의 대중들이 가진 정서적 요인을 저격하는 일이다. 천만 관객을 넘어 1700만 관객 가까이 끌어모은 ‘왕과 사는 남자’를 떠올려 보면 한국영화의 대중성이란 정서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입소문’이 관건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호프’도 입소문은 있었다. 그런데 그건 호감으로만 가득 채워진 게 아니라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에서 나온 논쟁적인 입소문이었다. 이런 경우에도 관객들이 궁금해서 영화를 보는 경향이 있다는 건 이미 ‘디워’에서부터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극장을 가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마음먹어야 하는 하나의 이벤트가 됐다. 호불호 반응 때문에 궁금하긴 하지만 좀 더 두고 보며 확실해진 것에만 마음이 움직인다. 정서적인 관점에서 보면 ‘호프’는 지나친 남성적 시각과 상대를 대상화해 버리는 일방적 시각이 불편한 지점을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괴생명체를 그저 대상화하고 어떻게든 제거하려는 인간들의 면면이 그래서 다 보고 나면 씁쓸하고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호프’는 어려워진 한국영화의 희망이 되진 못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희망이 현실을 잊는 도파민으로 생겨나기보다는 그 현실을 공감하는 정서적 연대를 통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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