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신철 국방부 장관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조건을 설명하며 내놓은 말입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전작권 전환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언급한 데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강 장관은 “조건은 ‘사이언스’(Science)와 ‘아트’(Art)적인 것이 있는 겁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실제로 강 장관은 앞서 전작권 전환 조건이 수치로는 충족되더라도 그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국민 입장에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전작권 전환 조건을 충족했다는 것인지, 아직 충족하지 못했지만 다른 판단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객관적인 군사적 평가와 정책적 판단의 경계가 어디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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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장관의 철학적인 화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달 장관 후보자로 첫 출근하면서 사관학교 통합 정책에 대한 입장을 묻자 “과거의 사관학교가 어떤 모습이었고, 어디에 있었고, 어떤 이름이었든 그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사관학교였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통수지침과 자신의 국방 철학이 충돌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변화하려면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으려면 변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기존 사관학교의 폐교나 폐지는 아니라는 강 장관의 말은, 국군사관학교 설립이나 사관학교 통합과는 뭐가 다르냐는 ‘말장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강 장관은 현역 시절부터 음악과 미술, 문학 등 인문학적 소재를 군사적 사고와 연결하기를 즐겨했다고 합니다. 2019년 제11기계화보병사단장 취임사에서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며 매일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의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거론하면서는 자유기동과 종심전투를 설명했습니다. 예하부대가 공격 개시선까지는 치밀하게 전개하되, 이후에는 자유롭게 기동해 목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023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취임사에서도 괴테의 ‘파우스트’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인용했습니다. 당시에도 아트와 사이언스가 만나 르네상스가 이뤄졌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변화를 위해 지켜야 할 것과 지키기 위해 바꿔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은 지난달 장관 후보자로서 했던 답변과 사실상 같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표현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군 지휘관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전쟁은 정해진 공식대로 움직이지 않고, 군사적 판단에는 경험과 직관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단장 시절 강 장관의 비유에는 나름의 구체적인 작전 개념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만 야전 지휘관이 취임사에서 자신의 전투철학을 설명하는 것과 국방부 장관이 국가 안보정책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다릅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국민이 정책의 방향과 판단 근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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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전략적 모호성’
그렇다면 이런 화법은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일 수 있습니다. 개혁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해석의 여지를 남겨 반대 여론을 관리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현재 논의 중인 방안보다 더 나은 대안이 있을 수 있다며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의도된 전략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군 내부의 이해관계가 얽힌 개혁을 추진하면서 처음부터 모든 방침을 확정적으로 밝히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반발을 무릅쓰고 밀어붙이는 것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조정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 장관의 모호한 답변도 갈등을 줄이기 위한 신중한 접근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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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작권 전환은 우리 군의 대비태세와 한미연합방위체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입니다. 협상 과정의 모든 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할 수는 없겠지만, 정부가 전환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했다고 판단하는지, 미국과 견해가 다른 부분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필요합니다. 한미 간 이견을 조정하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이 자칫 군사적 판단 기준까지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으로 비쳐서는 곤란합니다.
강 장관은 합참 작전본부장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지낸 예비역 4성 장군입니다. 오랜 군 생활에서 축적한 경험과 군사적 전문성이 그의 판단에 반영돼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는 한국에서 국방부 장관의 말은 개인의 생각에 머물지 않습니다. 군 내부와 국민은 물론 한미동맹에도 전달되는 메시지입니다. 장관이 어떤 생각으로 군을 이끌고 있으며, 국방개혁을 통해 무엇을 바꾸려는지 국민이 궁금해하는 이유입니다.
철학적인 화법도, 전략적 모호성도 나름의 쓰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이 장관의 발언을 접할 때마다 그 뜻을 짐작하고 해석해야 한다면 아쉬운 일입니다. 국방개혁에 반대하는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깊은 철학을 국민이 이해하기에 앞서, 그가 추진하려는 정책부터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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