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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숲은 1922년 임업시험장 설립과 함께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자 임업연구의 본류이다. 국가산림문화자산 1호로 지정된 홍릉숲은 41.5㏊의 부지 내 총 157과 2035종의 국내외 식물이 자리하고 있다. 홍릉숲과 숲이 보유한 다양한 산림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시민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부터는 평일 개방이 허용되면서 연간 30여만명의 방문객들이 홍릉숲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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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숲은 당초 숲과 수목원이 아닌 황후의 ‘능’(陵)에서 시작했다. 조선왕조사의 최대 비극이자 일제의 만행이 자행됐던 1895년(고종 32)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명성황후의 능이었다.
고종은 을미사변 후 1897년에 대한제국 명성황후로 추존한 뒤 청량리 일대에 ‘홍릉’(洪陵) 조성을 명했다. 1900년 홍릉에서 경기 남양주 금곡으로 능을 옮겼고 1919년 고종황제와 합장했다. 이후 이곳은 능이 있던 자리에 터만 남았지만 줄곧 홍릉으로 불리면서 망국의 한을 품고 있는 장소이자 항일의 역사적인 장소로 자리잡게 됐다.
홍릉숲이 임업연구의 산실로 변모하게 된 시점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이다. 조선총독부는 1913년 경기 포천 광릉과 서울 서대문 의령원에 임업시험소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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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에는 경의선 구간에 새로운 철도 노선이 확정되면서 의령원 임엄시험소는 홍릉으로 이전했고, 홍릉 임업시험장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1910년 대한제국으로부터 통치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제는 자원 수탈을 위한 조림과 임업연구가 필요했다. 이 때 상대적으로 산림 상태가 양호했던 능터에 임업시험장을 이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총독부는 홍릉숲에 임업시험장을 만든 후 한반도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희귀식물을 옮겨 심는 등 다양한 임업시험과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임업시험장 초기 기술 인력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었다. 홍릉숲에 임업시험장이 들어선 직후부터 일본 식물학자인 나카이 다케노신, 우에키 호미키, 이시토야 쓰토무 등이 임업 연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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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업연구원으로 근무한 일본인 아사가와 다쿠미는 한반도의 산과 숲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고 산림녹화에 애썼다. 잣나무의 노지발아법을 개발해 전파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희귀식물에 관한 연구도 주력했다.
그는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토대도 마련했다. 홍릉숲의 자랑인 최장수 나무 ‘반송’도 그가 홍파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홍릉에 옮겨 심은 것이다. 조선인 중에서는 정태현 선생과 김이만 선생 등이 수목원의 체계를 만들었다. 이 중 나무할아버지로 유명한 김이만 선생은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홍릉숲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들은 전국 각지로부터 종자 및 묘목을 수집·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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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업시험장 초기에는 버드나무원, 오리나무원, 고산식물원, 관목원, 약용식물원 등으로 관리됐고, 1948년까지 수집 보존된 석엽 표본은 목·초본 식물을 합해 모두 4000여종에 달했지만 한국전쟁 중 대부분 소실됐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는 일제 수탈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와 산림을 복구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홍릉숲에 자리잡은 국립산림과학원의 전신인 임업시험장도 수목원 기능의 복원을 위해 나섰다.
그 결과, 한반도 북쪽에서 자생하는 일부 수종을 제외한 남쪽에 분포하는 수종 대부분을 수집해 표본관을 복구할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다시 수목원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침엽수원, 활엽수원, 관목원, 외국수목원, 약초원, 고산식물원 등을 조성해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임업연구가 궤도에 오른 배경에는 1922년부터 한반도 각지에서 식물을 수집한 김이만·조무연·한상배 선생 등 3명의 공적이 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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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숲 임업시험장은 1987년 임업연구원으로, 2004년에는 국립산림과학원으로 각각 명칭을 변경했다. 그간 홍릉숲은 국립산림과학원의 부속 전문 수목원으로 국내외 다양한 식물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해 기초식물학 발전에 기여해 왔다.
목본 1224종과 초본 811종 등 총 157과 2035종 식물 2만여개체를 전시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는 총면적이 99㏊에 달했지만 현재는 전문수목원 14.5㏊, 자연학습장 3.5㏊, 고정시험지 4㏊, 환경보존림 13㏊, 경관풍치림 6.5㏊ 등 41.5㏊만 남아있다.
홍릉숲은 국제기준 표본목인 문배나무와 국내 식재원종인 두충의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 전국에 자생하는 식물 중 자생지에서 멸종됐다고 판단되거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든 식물들의 복원에도 기여하고 있다.
전북 군산시 소룡동의 청사조와 북한산의 산개나리, 수락산의 나비국수, 울릉도의 섬개야광나무, 서울 아차산과 북한산의 문배나무 등은 홍릉숲에서 보유 중인 수목으로 증식해 복원한 수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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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숲은 서울 도심 내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 서울시 지정 보호·야생 동식물의 서식처 기능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심숲, 산림휴양, 산림치유, 산사태, 산림수자원, 산림병해충, 산림기상 등에 관한 16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홍릉숲의 역사·학술·공공적 가치도 뛰어나다. 2014년에는 홍릉숲이 제1호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선정됐다.
지정 당시 정부는 산림문화자산을 ‘산림 또는 산림과 관련돼 형성된 것으로 생태·경관·정서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큰 유·무형의 자산’으로 정의하면서 홍릉숲을 ‘유형 산림문화자산으로 생태·경관·학술적으로 보선을 유지하기 위해 보호·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서울시도 2020년 홍릉숲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홍릉숲이 도시생태의 중심축으로 그 가치가 높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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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숲의 기온은 인근 기상청의 자동기상관측장비(AWS)인 동대문 지점보다 여름철 2.0℃가 더 낮게 나타났다. 홍릉숲의 미세먼지 농도값은 동대문구 환경부 측정값보다 낮다.
이와 함께 도시화된 지역에서 섬처럼 존재하는 녹지로 여러 생물종들의 서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주말에만 자유 관람이 가능했던 홍릉숲을 올해 3월부터 평일에도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게 했다. 기존에는 숲 해설 프로그램을 예약해야만 평일 관람이 가능했지만 국민 모두를 위해 전면 개방을 결정했다. 올해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 진행된 ‘홍릉숲 봄꽃축제’에는 2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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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과학원은 숲의 생태·학술적 가치를 상징하는 ‘홍릉 8경(景)’도 발표했다. 1972년 식재돼 봄철 눈부신 꽃비를 연출하는 왕벚나무, 국내 산림연구 성과를 알리는 산림과학관, 밀레니엄 동산, 자생 밤나무 3형제, 홍릉숲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수령 134년 반송(盤松), 식물 계절학 연구 핵심 지표인 복수초, 국내에서 가장 키가 큰(2025년 기준 38.97m) 노블포플러, 다양한 약용식물이 있는 낙우송숲 등이다.
가장 유명한 나무 중에는 1906년생 문배나무도 있다. 이 나무는 1935년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에 의해 처음 발견돼 기준표본목이 됐다. 이후 1966년 이창복 교수에 의해 문배나무로 이름이 지어졌다.
최병기 국립산림과학원 생활권도시숲연구센터 연구사는 “명성황후의 능을 조성하면서 당시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버드나무, 느티나무 등을 식재하면서 숲의 역사가 시작됐다”면서 “연구 방향도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토녹화에 기여할 수 있는 수종을 찾기 위한 노력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멸종위기종 또는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는 종들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사는 “자원식물 중에서는 이곳에서 처음 들여온 뒤 전국에 보급된 종들이 많다”며 “멸종위기종의 유전자원을 수집한 뒤 거의 사라진 종들을 다시 복원한 사례도 적지 않다. 기후변화 시대에 그나마 과학원이 다양한 방법으로 종 자원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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