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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한 청혼자를 처형하는 냉혹한 공주 투란도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반해 목숨을 걸고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왕자 칼라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하지만 초연 100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이 기획해 지난 7월 22~26일 선보인 오페라 ‘투란도트’의 연출가 정선영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과 복수의 고리를 끊어내는 희망의 이야기”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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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투란도트’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다. 정확히 말하면 푸치니가 후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완성하지 못해 ‘미완’으로 남긴 유작이다. 푸치니가 쓴 것은 3막에서 칼라프의 하녀인 류가 스스로 생을 끝낼 때까지다. 그래서 1926년 4월 25일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린 ‘투란도트’ 초연 무대에서는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가 이 장면 후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무대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토스카니니가 푸치니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현이었다.
문제는 푸치니가 완성하지 못해 그의 후배인 프란코 알파노(1875~1954)가 쓴 마지막 부분이다. 매끄럽지 않은 전개와 개연성 떨어지는 서사로 인해 이 작품에 반감을 갖는 관객들이 꽤 많다. 투란도트의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완력에 의해 칼라프가 강제 키스 하는 내용, 이후 투란도트가 갑자기 투쟁 의지를 상실하고 사랑에 빠져드는 내용이 그렇다.
높은 음악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투란도트’가 대중적 공감대를 넓히는데 한계가 있었던 이유다. 타인에 대한 부당한 제압이 긍정적 효과로 이어진다는 설정은 오늘날 더욱 불편하게 여겨지면서 투란도트가 자살하거나 칼라프를 죽이는 등 다른 결말로 무대에 올리는 프로덕션도 있을 정도다.
정 연출은 전작인 ‘토스카’, ‘피가로의 결혼’ 등에서 작품을 과감히 해체하고 재구성해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던 인물이다. 이번에도 정 연출은 현대적 감각으로 대본을 손질해 관객들이 느낄법한 ‘불편함’을 덜어냈다. 칼라프가 강제 키스 대신 무릎을 꿇고 “당신을 위해 기꺼이 패하겠다”고 말하며, 사랑을 쟁취가 아닌 존중으로 풀어낸 장면이 대표적이다.
완력이 아닌, 열정을 다한 칼라프의 설득에 남성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 찼던 투란도트의 마음은 점차 누그러들어 그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이후 투란도트의 “사랑”이라는 외침과 함께 잿빛 무대는 푸른 하늘로 바뀌며 극은 마무리된다. 정 연출은 이 장면을 통해 사랑을 넘어 평화에 이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그는 “오늘도 지구 어느 편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무참히 불태우고 그것으로 얻은 이익을 자랑삼아 떠들어대는 기괴한 세상을 살고 있다”면서 “잔혹한 무기를 내려놓고 치졸한 전쟁의 시대를 멈추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풍을 덜어낸 무대디자인과 의상으로 보편성을 높이고, 투란도트에게 공주옷 대신 전투복을 입혀 여성의 주체성을 강화한 연출도 인상적이다. 작품의 메시지가 보다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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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이 특히 관심을 모았던 것은 세계적인 테너로 성장한 백석종의 국내 첫 전막 오페라 무대였기 때문이다. 객석에선 그의 연기, 노래, 호흡 하나하나 숨죽여 지켜봤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백석종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풍부한 성량과 곧게 뻗어나가는 안정적인 고음을 선보였다. 그의 질감 좋은 목소리에 매료된 관객들은 공연 내내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대표 아리아인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부를 때에는 마지막 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렁찬 박수와 함께 연신 “브라보”가 터져나왔다.
‘투란도트’에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아리아들이 여럿 있다. 류가 칼라프에게 위험한 도전을 포기해 달라고 애원하는 ‘주인님, 들어주세요!’(Signore, ascolta!), 투란도트가 왜 구혼자들에게 잔혹한 시험을 내리는지 자신의 신념을 밝히는 ‘이 궁전 안에서’(In questa reggia), 류가 죽음을 앞두고 투란도트에게 부르는 마지막 아리아 ‘얼음 같은 마음을 지닌 당신’(Tu che di gel sei cinta )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공연에서 백석종의 칼라프 못지 않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황수미의 류였다. 푸치니 특유의 서정미를 품은 캐릭터인 류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투란도트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하지만 희생과 숭고한 사랑을 강조하는 캐릭터이기에 자칫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비쳐질 수 있다.
황수미는 특유의 섬세한 음색과 풍부한 감성 표현으로 류의 따뜻함, 헌신적인 사랑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다. ‘완벽한 류’의 모습이었다. 폭발적인 고음과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차갑고 권위적인 투란도트의 이미지를 잘 살린 폴란드계 미국 소프라노 에바 프원카와 선명한 대척점에 섰다.
B캐스트(서선영-김영우-신은혜)도 A 캐스트(에바 프원카-백석종-황수미)에 결코 뒤지지않는 실력을 보여줬다. 김영우는 묵직한 중·저음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칼라프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서선영의 투란도트, 신은혜의 류도 탄탄한 가창력으로 관객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번 ‘투란도트’는 4회차 공연에 총 7776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티켓 오픈 3주 만에 전 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한 데 이어, 시야제한석을 추가 개방해 객석점유율은 무려 103%에 달했다. 사랑이라는 큰 틀 안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품어낸 정 연출의 독창적인 해석은 오페라 마니아에게는 신선한 자극으로, 작품을 처음 마주한 관객들에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귀와 마음을 여는 것. 정선영의 ‘투란도트’를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것은 단지 그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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