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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훈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글로벌규제컨설팅사업단 단장]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의약품이 환자에게 신속하게 전달되도록 돕는 일이다.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이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들어가는 만큼, 투자금을 회수하고 다음 신약을 개발하려면 수익이 필요하다.
그러나 치료제가 절실히 필요한데도 시장이 작아 충분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질환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아 희귀질환이다.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개발을 포기한다면 해당 질환을 앓는 아이들에게는 치료제가 영영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은 이러한 치료제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마련했다. 그중 하나가 ‘소아 희귀질환 우선심사 바우처’(Rare Pediatric Disease Priority Review Voucher)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해 FDA 승인을 받은 회사에는 우선심사 바우처가 주어질 수 있다. 이 바우처를 사용하면 다른 신약허가신청서의 심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약허가신청서의 표준심사 목표기간은 10개월이지만 우선심사를 받으면 6개월로 줄어든다.
원래 우선심사를 받으려면 중대한 질환에서 기존 치료법보다 의미 있는 개선을 제공할 가능성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바우처를 사용하면 해당 신약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우선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
문제는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한 작은 회사에 당장 허가를 신청할 다음 후보물질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용할 일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바우처라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이 바우처는 다른 회사에 팔거나 양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바우처가 필요한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간 수십억달러의 매출이 예상되는 신약이라면 허가가 넉 달 빨라지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매출을 먼저 확보할 수 있다. 경쟁제품보다 먼저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특허로 보호받는 기간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반면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한 작은 회사는 바우처를 팔아 연구개발비를 회수하거나 다음 후보물질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FDA 입장에서는 시장의 힘을 이용해 수익성이 낮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장려한다는 점에서 영리하게 설계된 제도다.
그렇다면 넉 달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미국 바이오 전문매체 바이오스페이스(BioSpace)가 2025년 3월까지 발행된 우선심사 바우처 80건을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당시 바우처 거래가격은 약 1억5000만달러(약 2013억원)까지 올라가 있었다. 알려진 거래 중 최고가는 2015년 애브비(AbbVie)가 지불한 3억5000만달러(4697억원)였고 최저가는 2023년 노바티스(Novartis)가 지불한 2120만달러(285억원)였다.
1억5000만달러를 넉 달, 약 120일로 나누면 하루 약 125만달러다. 환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 돈으로 하루 16억원이 넘는다. 역대 최고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의 가치는 거의 300만달러(40억원)에 이른다.
물론 바우처 거래가격을 신약의 하루 매출과 정확히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바우처 가격에는 시장 선점 효과와 경쟁 상황, 승인 가능성, 예상 매출 등 여러 요소가 반영된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심사기간을 넉 달 앞당기기 위해 실제로 1억달러가 넘는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신약개발에서 시간이 얼마나 비싼 자원인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신약개발은 여러 의미에서 시간과의 싸움이다. 경쟁약이 먼저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임상시험이 늦어지는 동안 회사의 자금은 계속 소진된다. 허가가 늦어진다고 특허 만료일이 그만큼 뒤로 미뤄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치료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환자에게 몇 달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신약개발 업계에서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하루의 가치가 100만달러다.”
처음 들으면 과장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선심사 바우처의 실제 거래가격을 계산해 보면 결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에서 여러 제약·바이오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하면서 회의가 끝날 무렵이면 꼭 묻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다음 일정은 언제입니까?”
“임상시험계획(IND)은 언제 제출하실 계획인가요?”
“FDA와의 사전 IND(pre-IND) 미팅은 언제 요청하실 생각인가요?”
대답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내년 상반기에 할 예정입니다.”
또는 “2028년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다시 묻는다.
“상반기는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인데, 그중 언제입니까?”
대부분 이 대목에서 웃는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신약개발 일정을 정확히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험 결과가 예상과 다를 수 있고 환자 등록이 늦어질 수도 있다. 제조공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규제기관이 추가자료를 요구할 수도 있다. 특히 작은 바이오기업은 개발 역량뿐 아니라 투자유치 여부와 자금 사정에 따라서도 일정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변수가 많다는 것과 일정이 없어도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내년 상반기’는 구체적인 목표라기보다 희망에 가깝다. IND를 3월 31일에 제출하려면 독성시험은 언제 끝나야 하는가? 임상시험용 의약품은 언제 생산해야 하는가? 안정성 자료는 어느 시점까지 확보해야 하는가? 임상시험계획서는 누가 언제 작성하고 검토할 것인가? FDA에 물어볼 질문은 언제 확정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하나씩 답하다 보면 하나의 제출일이 수십 개의 세부 일정으로 나뉜다. 각 업무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독성시험이 늦어지면 시작용량을 결정할 수 없고 제조자료가 준비되지 않으면 IND를 제출할 수 없다. 한 부서의 2주 지연이 전체 개발일정의 두 달 지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업무와 일정을 관리하는 일이 프로그램 관리(program management)다.
프로그램 매니저는 단순히 회의 일정을 잡고 진행표에 색깔을 칠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체 개발과정에서 어떤 업무가 다음 단계 출발을 결정하는지, 즉 핵심 경로(critical path)를 파악해야 한다. 각 업무 담당자와 마감일을 분명히 정하고 문제가 생기면 감추지 않고 조기에 드러내야 한다. 여러 부서 판단이 충돌할 때는 결정권자에게 제때 문제를 전달해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결정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신약개발에서 시간이 낭비되는 이유가 반드시 일을 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료는 모두 준비됐는데 결정을 내릴 사람이 없거나 모든 사람이 회의에 참석했지만 정작 누구에게 결정권이 있는지 몰라 몇 주를 허비하기도 한다. 작은 의견 차이를 해결하지 못해 같은 문서를 여러 번 돌려보기도 하고 외부업체에 맡긴 업무를 제때 확인하지 않아 마감 직전에야 문제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의 가치가 100만달러라고 말하면서 정작 회사 안에서는 결정 하나를 몇 주씩 미루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프로그램 관리의 목적이 모든 일을 무조건 빨리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IND나 신약허가신청서(NDA)를 서둘러 제출했다가 접수거부나 임상보류, 보완요구를 받으면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잃을 수 있다. 중요한 안전성 문제를 무시하거나 자료의 완성도를 희생하면서 날짜만 지키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좋은 프로그램 관리는 단순히 일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다. 꼭 필요한 일을 빠뜨리지 않으면서 불필요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없애는 일이다.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 무엇은 지금 가진 자료로 결정할 수 있는지, 어떤 위험은 감수할 수 있고 어떤 위험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모든 직원이 매일 시계만 바라보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연구에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과학적 판단에도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직 전체에는 시간의 가치를 기억하고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FDA 심사기간 넉 달을 줄이기 위해 기업은 1억5000만달러를 지불한다. 그렇다면 회사 내부의 불분명한 책임과 늦은 의사결정, 준비 부족으로 사라지는 한 달은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신약개발에서 시간은 달력 위의 숫자가 아니다. 회사의 자금이고, 특허로 보호받는 기간이며, 경쟁력이다. 환자에게는 치료제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년 상반기’라는 대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제까지, 누가, 무엇을 끝내고, 어떤 근거로 다음 결정을 내릴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모든 일정이 계획대로 흘러갈 수는 없다. 하지만 계획이 있어야 지연을 발견할 수 있고, 지연을 알아야 다시 앞당길 수도 있다.
하루의 가치가 100만달러를 넘을 수 있는 신약개발에서 일정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다.
지켜야 할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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