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8일 보고서에서 “한국형 베어허그법 도입이 추진, 이는 상장회사가 인수 제안을 받으면 이사회가 제안의 조건과 이에 대한 의견 표명, 거절 시 그 사유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라며 “저평가 기업은 M&A의 표적이 될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고, 외부 세력의 M&A 시도는 경영진·이사회·대주주 등으로 하여금 주가를 부양하도록 하는 강력한 트리거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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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허그(Bear Hug)는 M&A 전략 중 하나다. 인수 시도자가 대상 기업에 사전 예고 없이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개적인 매수 제안을 하고 경영진 및 이사회로 하여금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곰이 앞발로 사냥감을 강하게 껴안아 꼼짝 못 하게 가두는 것처럼, 거절하기 힘든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 경영진 및 이사회를 직접 압박할 뿐 아니라 주주와 시장의 압력까지 이끌어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인수 제안가는 통상 현재 주가에 상당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제시되는데, 미국 등의 입법 제도 하에서는 인수 제안가가 주주들에게 매우 이익이 되는 수준인데도 경영진이나 이사회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절할 경우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거나 배임 혐의를 받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K-자본시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지난 3일 이른바 ‘한국형 베어허그(K-Bear Hug)법’으로 불리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상장회사가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수 제안을 받게 되는 경우 이사회가 제안의 접수 내용과 향후 검토 계획을 즉시 공시하도록 하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절차를 거쳐 공개매수에 대한 의견 표명(수용, 거절, 중립 등)을 하며 논의 경과 및 사유 등을 주요사항보고서에 상세히 기재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법 하에서는 상장회사가 M&A 제안을 받아도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 없다’는 식으로 불투명하게 공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일반 소액주주들은 제안의 세부 조건은커녕 제안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려웠다. 반면 대주주나 경영진·이사회는 제안 조건을 미리 파악한 상태에서 사전적인 주식 거래로 사익을 취하는 것도 가능했다.
한국형 베어허그법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찬성 측은 M&A 과정에서 이사회의 책임(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등)이 강화되고, 일반 소액주주들도 M&A 제안 관련 정보를 공유받아 제안 수락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으며, 전체 주주가 프리미엄이 더해진 가격에 보유 주식을 매도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본다.
또 M&A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저평가 기업의 가치 부양, 경영진의 사익을 위한 유리한 인수 제안 거절 방지 효과도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반면 반대 측은 상장회사들이 경영권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며 차등의결권주,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자금 조달 능력이나 진지한 인수 의사가 없는 제안자의 허위 제안으로 시세 교란이 일어날 수 있고, 상속세 및 증여세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주가 부양 유인이 근본적으로 강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에 따르면 공개매수 대상 회사는 매수 제안이 처음 공표된 날로부터 영업일 기준 10일 이내에 제안에 대한 수용·거절 여부 또는 중립 입장과 그 사유를 주주들에게 공시해야 한다.
영국의 인수합병 규정인 테이크오버코드(Takeover Code)는 대상 회사 이사회가 제안에 대한 의견과 그 근거, 독립 자문사의 조언 내용, 주주들이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한 권고 사항을 인수제안서에 담도록 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의 기업인수 가이드라인 역시 이사회가 ‘진지한 제안’에 대해 성실하게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엄 연구원은 “인수합병 시장은 오랜 기간 낮은 주가를 방치해 온 경영진에 대한 외부 견제·감독 장치”라며 “한국형 베어허그 제도가 도입되면 이사회가 정당한 사유 없이 외부자의 진지한 인수 제안을 거절할 경우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저촉 등에 해당돼 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베어허그 제도가 정착되면 M&A 시장의 외부 견제·감독 기능이 종전보다 강화될 것이고, 이는 저평가 기업들의 자발적인 가치 제고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금년 하반기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은 의무공개매수제도에 대해서도 “지배주주만 인수 관련 정보 및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점함에 따라 일반 소액주주가 의사결정 과정과 투자자금 회수 기회에서 소외되던 문제를 완화한다는 점에서 한국형 베어허그 제도와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소영·이훈기 의원이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PBR 0.8배법)과 한국형 베어허그 제도가 모두 도입되면 국내 상장회사들의 고질적인 주가 누르기 이슈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진지하게 해당 기업을 인수할 의향 없이 시세 교란을 통한 단기 차익 획득이 목적인 외부 세력의 허위 제안이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엄 연구원은 “인수 대상 기업의 경영진·이사회가 인수 시도자가 제안한 인수 가격과 거래 조건이 구체적인지, 경영권 확보 후 장기 경영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지, 단순히 경쟁사가 내부 정보를 취득하기 위한 목적은 아닌지, 자금 조달 계획이 현실적인지, 규제에 따른 감독당국의 인가·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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