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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에 따르면 이날 오후 JSA 지역 북측 판문각 전방에 위치한 북한군 초소에서 우리 측 ‘자유의 집’ 방향으로 북한군 1명이 귀순해 우리 군이 신병을 확보했다.
북한군은 귀순 과정에서 총격을 받아 흉부와 복부 등 5~6곳에 총상을 입고 7~8곳의 장기가 손상됐다. 현재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경기 남부 권역외상센터로 긴급 후송돼 치료 중이다. 수술은 이국종 교수가 맡았다.
이에 앞서 한국 땅을 밟은 귀순 군인들의 사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귀순 사례들은 ‘전투기 귀순’부터 ‘노크 귀순’, ‘숙박 귀순’까지 다양했다.
1983년 2월 25일 “자유를 맛보고 싶다”며 북한의 주력 전투기인 미그19(MIG-19)를 끌고 귀순한 사람은 이웅평 대위였다. 당시 이웅평 대위는 평남기천비행장에서 출발해 연평도를 지나며 북한군 소속 전투기들의 추격을 피해 남한 땅을 밟았다.
이웅평 대위는 북한에서의 계급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재입대했으며 ‘미그-19’의 군사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상금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 무장공비 출신인 김신조는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 남한으로 넘어왔다가 귀순했다. 남파된 북한 특수부대 124군부대 소속 31명 중 유일하게 생포됐으며 귀순을 택했다. 그는 이유에 대해 “김일성의 허위전선에 속아 살아왔음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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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일 북한군 병사 1명이 우리 군 GOP(민간인 통제구역)의 창문을 두드리며 귀순한 사례가 있다. 귀순한 북한군은 북과 남의 철책을 넘고 비무장지대에 있는 지뢰를 피한 뒤 북한과 남한의 GP 근무자들의 눈을 피해 귀순했다. 이후 군은 귀순 유도벨을 설치해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숙박 귀순’은 지난 2015년 6월 15일 발생했다. 당시 19세로 알려졌던 북한군 하전사 1명이 우리 군 초소로 귀순했는데, 그는 귀순 하루 전날인 14일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500m 떨어진 언덕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우리 군에 귀순 의사를 밝혔다.
당시 우리 군 관할 지역에서 북한군이 숙박하며 귀순을 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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