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저유가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연료보조금을 대폭 줄여 휘발윳값을 올리고, 내년 정부지출도 줄이기로 했다.
다른 중동 산유국도 마찬가지다. 저유가 파고를 넘기 위해 에너지가격 현실화를 단행하고 씀씀이를 줄이면서 생존 모색에 나섰다.
재정적자에 빠진 사우디…지출 줄인다
28일(현지시간) 사우디 아라비아는 내년 재정지출 규모를 8400억리얄(약 261조원)로 올해 예상치인 9750억리얄에 비해 14% 낮춰잡았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미리 정한 선보다 더 지출해온 사우디가 예산 한도를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체감 감소폭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올해에도 연초 계획상 지출규모는 8600억리얄이었는데 실제 지출규모는 14% 많았다.
국제유가가 지난해 중순 이후 50% 이상 급락하면서 정부 곳간도 바닥을 드러냈다. 올해 재정적자는 3670억리얄로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급한 대로 외환보유액과 국부펀드를 헐어 썼고, 지난 7월에는 8년 만에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이로도 부족해 사상 해외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한때 큰 손이었던 사우디가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손을 벌리는 것이다.
유가 하락이 가장 큰 이유지만 고유가 시절 흥청망청 썼던 관행을 못 고친 탓도 있다. 올해 재정적자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이 올 초 왕위에 오른 이후 공무원에게 지급한 대규모 보너스가 컸다. 이 보너스 금액만 880억리얄에 달한다. 여기에 예멘 전장으로 국방비에 200억리얄을 지출했다.
또 복지 차원에서 연료보조금을 통해 싼값에 에너지를 제공해왔다. 사우디 휘발유 가격은 베네수엘라, 리비아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낮았다.
내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정부는 내년 세수를 5138억리얄로 추산했다. 올해 6080억리얄에 비해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3262억리얄의 재정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휘발윳값 67%까지 인상
지출을 줄이면서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싼값에 제공했던 에너지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당장 29일부터 고급 무연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0.6리얄에서 0.9리얄(약 280원)로 인상한다. 보통 휘발유는 67% 올린다. 이밖에 가스와 경유, 등유를 비롯해 수도요금과 전기요금도 인상한다.
다만, 석유화학제품과 수도요금, 전기요금에 대한 보조금을 향후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줄여 급격한 가격변동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로 했다.
사우디 재무장관은 “가격 인상은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고 원자재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입을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휘발유 가격 인상을 발표하자 28일 사우디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이 길게 줄을 섰고 일부 주유소는 문을 닫기도 했다.
한편 이같은 긴축 안으로 사우디 기업들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가 재정집행을 줄이거나 연기하면서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모니카 말릭 아무다비상업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내년 증가하더라도 그 증가폭은 상당히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 전반을 이끌었던 정부지출이 감소하면서 석유를 제외한 GDP도 성장률도 완만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걸프국도 에너지 요금 줄줄이 인상
사우디의 이같은 행보는 다른 중동 산유국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사우디를 비롯해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오만 등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의 재정적자는 올해 18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820억달러 흑자에서 작년 240억달러로 대폭 줄었고, 올해에는 적자전환한 것이다. 저유가로 인해 앞으로도 몇 년간은 적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달 GCC에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수년간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만큼 재정지출을 조정해야 한다”며 “원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도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GCC는 재정의 90%를 에너지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다.
일부 중동국가는 구조개혁에 이미 착수했다. UAE는 지난 6월 에너지 가격을 자유화하고 아부다비의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이를 통해 수십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쿠웨이트는 올해 초부터 경유와 등유를 시장 가격에 팔기 시작했다. 지출을 17% 줄이고 휘발유 가격과 전기요금, 수도요금을 인상하는 과정에 있다. 카타르 역시 재정지출을 줄이고 보조금을 삭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만과 바레인도 긴축안을 발표한 바 있다.
샨타 데바라잔 세계은행 중동 및 북아프리카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이제 시작단계로 개혁과 일자리, 경제다양화 등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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