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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미카법에 따르면 전자화폐토큰(e-money token·EMT)을 발행하는 전자화폐기관은 준비자산의 최소 30%를 신용기관에 맡기도록 돼 있다. 결국 준비금의 30%가 무조건적으로 은행 예금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미카법상 ‘중요(significant) 토큰’으로 지정될 경우 이 비율은 60%까지 높아진다. ‘중요’ 여부는 단순히 유통가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준을 종합해 규제당국이 분류하는 개념이다.
ESCB는 이 같은 고정 예금비율을 폐지하고, 대신 준비자산의 만기 구조와 연계한 최소 유동성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영업일 기준 1일 이내와 5일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의 최소 보유비율을 설정하자는 제안이다.
오버나이트(만기 하루짜리)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과 단기 국채도 유동성 자산의 예로 제시됐다. 만기가 가까운 고품질 증권은 발행사가 별도의 매수자를 찾거나 시장가격을 감수하며 매각하지 않고도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장기채권은 거래가 가능하더라도 금리나 시장 상황이 바뀐 상태에서 조기 매각할 경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ESCB가 지적한 핵심 문제는 은행예금의 이중적 성격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입장에서 은행예금은 즉시 인출할 수 있는 유동자산이지만, 그 예금을 보유한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이 요구할 경우 반환해야 하는 부채다. 일반 가계의 소매예금은 서로 다른 이유로 분산돼 인출되는 경향이 있지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고객들이 동일한 시장 충격에 동시에 반응할 경우 대규모 자금을 한꺼번에 이동시켜야 할 수 있다.
특히 ECB의 유로 스테이블코인 분석에 따르면 전자화폐기관이 은행에 예치한 자금은 은행 유동성 규제상 100% 유출률(outflow rate)이 적용된다. 이는 실제로 모든 예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예측이 아니라, 은행이 그런 가능성에 대비하도록 하는 규제상 스트레스 가정이다. 이에 비해 해당 분석에서 언급된 일부 소매예금의 가정 유출률은 불과 5%였다.
결국 고객 계좌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비은행권 스테이블코인을 매입하는 데 사용된 뒤 다시 은행 시스템으로 돌아올 경우, 은행 입장에서는 더 불안정한 형태의 조달자금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코인텔레그래프는 ECB의 추산을 인용해, ‘중요’ 전자화폐토큰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발행사가 국채를 매도하기 전에 먼저 은행예금을 활용해 전체 발행량의 60%에 해당하는 상환요구를 처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결국 미카법의 예금 버퍼가 토큰 보유자를 보호하고 채권의 강제매각 위험을 줄이는 대신, 빠르게 이탈할 수 있는 자금을 은행이 떠안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ECB는 현재까지 이 규정 때문에 은행에 손실이 발생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경고는 규제된 유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앞으로 훨씬 커질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 시나리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ECB에 따르면 유로 스테이블코인의 합산 시가총액은 2024년 초 약 5000만유로에서 올 약 4억5000만유로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달러 표시 스테이블코인의 규모는 약 3000억달러에 달했다.
문제는 향후 시장이 더 커졌을 때다. 만약 총 500억유로 규모의 토큰이 ‘중요’ 토큰으로 지정된다면 현행 규정상 최소 300억유로가 은행예금으로 들어가야 한다. ECB는 지난 4월 분석에서 준비자산 예금을 여러 은행에 분산하고, 한 은행이 특정 스테이블코인에 노출될 수 있는 규모를 제한하는 안전장치 초안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집중위험을 줄일 뿐,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 자체를 낮추는 것은 아니다.
유럽은행감독청(EBA) 기준에 따르면 ‘중요’ 스테이블코인은 준비자산 가운데 최소 40%를 영업일 1일 이내에, 최소 60%를 5영업일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유해야 한다. 일반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이 비율은 각각 20%와 30%다.
중앙은행들은 EU 집행위원회가 진행 중인 미카법 특정항목 재검토에 의견을 제출했으며, 관련 의견수렴은 9월30일까지 진행된다. 집행위원회는 제출된 의견을 토대로 미카법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평가한 뒤 향후 입법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번 제안은 ECB가 토큰화된 도매금융시장에 중앙은행 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폰테스(Pontes)’ 결제 브리지를 출범시킨 바로 다음 날 나왔다. 폰테스가 규제된 토큰화 도매시장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번 미카법 재검토는 민간 디지털화폐가 상업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의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
향후 집행위원회가 판단해야 할 핵심은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을 은행의 ‘급속 이탈 가능 자금’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신속한 상환을 보장할 수 있는 대체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느냐에 있다. 또 대체 기준이 명확히 정해지기 전에 은행예금 의무비율부터 없앨 경우 하나의 유동성 문제를 다른 형태의 유동성 문제로 바꾸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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