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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제재안에는 러시아 수출과 금융 시스템을 겨냥한 조치와 함께, 러시아산 원유 수출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게 묶어두는 장치가 담겼다. 그러나 각국의 거부권 행사로 이 장치마저 위태로워졌다.
가장 강하게 버티는 곳은 그리스다.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제3국으로 실어 나르는 것을 허용해주지 않으면 제재안 전체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국 해운 부호 조지 프로코피우가 타격을 입는다는 이유에서다. 프로코피우가 이끄는 다이나가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북극 야말 프로젝트에서 LNG를 3000만t 넘게 실어 날랐다. FT는 화물 가치가 240억달러(약 35조8000억원)를 넘는다고 추산했다.
미국의 전직 제재 담당자는 “제재 비용에서 자국 이익을 지키려는 게 그리스만은 아니다”라면서도 “정부가 러시아 사업으로 그토록 짭짤한 이익을 보는 특정 기업 하나를 대신해 로비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나라들도 제 몫을 챙기고 있다. 독일과 포르투갈은 자국 수산 가공업을 지켜야 한다며 러시아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항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관광 대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군인에게 EU 비자를 내주지 않는 조항을 완화하자고 나섰다. 오스트리아는 라이파이젠은행이 러시아에서 부과받은 벌금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20억유로(약 3조4088억원) 규모의 러시아 자산 동결을 풀어달라고 했다.
협상에 참여한 한 외교관은 “테이블에서 도덕적 명분이 점점 힘을 잃고 있다”며 “각국 수도는 강경한 말과 연대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다음에는 다 녹아 없어진다”고 토로했다. 다른 외교관은 “제재 방식 전체의 중대한 위기”라며 “모두가 예외와 빠져나갈 구멍을 요구하면 결국 제재 패키지는 빈 상자가 된다”고 지적했다.
EU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직전부터 20차례 제재를 부과해왔다. 러시아산 비료와 철강 수입 금지처럼 기존 조치도 만장일치를 얻기까지 수주간의 실랑이가 필요했지만, 외교관들은 이번처럼 거부가 광범위한 적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야코프 키르케고르 브뤼겔 선임연구원은 EU가 “대러 제재의 정점에 가까워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회원국 지도자들 눈에는 이제 왕관의 보석이 위험에 처했다”며 “지도자들이 더는 이 문제로 창피를 당하거나 떠밀려 물러설 수 없다고 여기는 지점에 왔고, 그래서 사실상 손댈 수 없는 영역이 됐다”고 짚었다.
전쟁 초기 손실을 떠안았던 나라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나온다. 덴마크 칼스버그와 핀란드 포르툼 등은 제재와 러시아 법인 압류로 수십억 규모의 손실을 봤다. 한 외교관은 “2022년에도, 2023년에도 러시아와 사업을 끊지 않은 회원국들이 있다”며 “이제 우리가 그 산업들을 겨냥하는 이유는 거기가 아직 남은 큰 돈벌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사들이 서로를 가리키며 ‘우리 사업 이익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으니 네 것을 포기하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런 지연은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와 주요 정유시설을 겨냥한 장거리 타격으로 러시아를 압박하는 시점에 벌어졌다. 서방은 우크라이나 지원국들의 단일 전선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길 기대해왔다.
외교관들은 소극적인 태도가 결국 러시아를 자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보느냐 여부로 귀결된다고 설명한다. 한 외교관은 “지금 우리가 벌이는 논쟁은 사실 러시아 위협 평가에 관한 것”이라며 “4년 전 북유럽이나 발트 국가들은 위협을 이해했기에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봤지만, 지금 다른 나라들은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