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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소장은 두번째 논문에서는 안상호의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첫번째 논문에서는 ‘안상호’의 이름이 6번 명기된다며 “논문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6년 11월 평의원 21명 중 한 명으로 등록이 되어 있고 이후 명단에서는 사라진다. 논문 저자의 설명 또한 간략하다. 의료인은 안상호 외 4인이었고 안상호에 대한 설명은 고종의 전의 출신으로 안상호 진찰소를 운영한다고만 설명되어있다”고 짚었다.
이어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했듯 이정은의 논문에서는 그가 황실 촉탁의로 전염병이 만연했을 때 했던 의료봉사활동 그리고 자혜병원 설립자 등 초기 근대 의료기관 형성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서술이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일본 부인과의 국제 결혼’ 그리고 여러분이 익숙히 알고 있는 ‘매일신보’의 보도로 인해 한국인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고 뒤늦게 고종 독살설에 연루를 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 소장은 “이 정도 자료를 두고 그는 ‘친일파가 맞아’라고 단정할 수 있다. 더구나 앞선 글에서 밝혔고 저 또한 여러 각도로 추정해 본 결과 그는 식민지 지배에 순응했고, 근대 의료 보급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었지만 나머지 영역에서는 적당히 일제와 결탁하면서 영화를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앞에서 설명했듯 ‘대정친목회’ 연구에 있어서 그의 친일 활동이 초기 ‘친목 단체 활동’ 당시의 가입 사실과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인생 말년의 단편적인 기록 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심 소장은 “이를 두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시류에 영합하여 대중적인 호감을 사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학문적으로는 결코 옳지 못한 행동”이라며 “소위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을 법학이 아닌 역사학에 단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쉽게 규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과거사에 대해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도 털어놨다.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정신 때문이라며 △5.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 간부로 활동하였던 자 △10. 일본 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단체본부의 수뇌 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12.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를 언급했다.
이어 “반민법을 보면 굳이 ‘수뇌’ ‘지도적 행동’ ‘악질적인 행위’ 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제6조에는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즉, 적극적인 부일 협력자에 대해서는 단호한 처단을, 그렇지 않은 자 혹은 죄를 지었더라도 반성을 하면 그에 걸맞는 처벌을 하겠다는 발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이때 제대로 처벌을 했다면’이라고 말한다. 저도 극히 공감한다”며 “많은 분들이 ‘친일파 파묘 및 재산 환수하자’고 하고 저 또한 부일협력 관련 특별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몇 가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첫째, 대정친목회 명단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 둘째, 안상호가 역사적 단죄를 받을만한 죄를 지었는가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라며 “현재는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이 빠져 있고 연구 결과가 위와 같은 수준이다. 당연히 이는 학자들의 추가적인 연구와 관련 전문가들의 합의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국민적인 소통으로 결정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있다면 저 역시 그것에 근거해서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 소장은 “오해와 모욕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저의 부덕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 반성하며 노력하도록 할 것”이라며 “다만, 친일파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하고 그래서 더욱 확실하게 역사적 진보를 이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앞서 심 소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하영 증조부 안상호에 대해 “그가 당시 엘리트였고, 대정친목회 등 친일파들이 많이 참여했던 단체에 소속된 것, 그리고 일본이 시정 홍보를 할 때 그의 집안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만년의 그가 존경받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맞지만 ‘친일 부역 행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단체에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여배우의 증조부는 젊은 날 의친왕의 총애를 받았던 뛰어난 의학 엘리트였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을 좌시하지도 않았다고 보인다. 물론 그의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진다면 그는 친일파가 되겠지만 그것은 밝혀진 다음에나 할 이야기다. 여배우의 잘못이라면 그러한 가족사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진실한 반성이 없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들은 친일파 규정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는 심 소장의 글을 하영의 입장을 옹호한다고 오해해 비난을 보냈고, 결국 심 소장이 해명한 것이다.
글을 보면 심 소장의 의도는 안상호는 존경할만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현재 연구에 따르면 친일 부역 행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친일파라는 규정은 명확한 행위가 밝혀졌을 시 이어져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 행적이라는 것이 하나만 확인됐을 때 등재되진 않고, 행위가 얼마나 지속적·반복적·적극적인지 검토를 해 확인이 됐을 경우 등재를 했다”고 설명했다. 대정친목회는 친일 단체가 맞고 소속 회원들이 친일인명사전 검토 대상에 올랐지만, 가입 사실만으로 친일인명사전의 등재 기준이 되진 않고 그 외 행적들을 살펴본 뒤 등재를 했다고 전했다. 안상호의 경우도 같은 상황이라며 친일 단체의 소속인 것이 확인됐으나, 그외 기준이 미달돼 등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친일인명사전을 작성한지 17년이 지났고 친일 행적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그때 당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고 해서 친일 여부가 없다고 판단할 수 없고, 친일 단체에 가입했다는 것만으로도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며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안상호 뿐만 아니라 후보군이 수백 명 있다. 그 인물들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할지 행적 조사를 하고 있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나 각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을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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