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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놔두고 편히 죽지 못해”…장애인 가족들의 삭발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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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기자I 2022.04.19 19:02:09

청와대 인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결의대회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요구
80대 할아버지도 손자 위해 삭발…“국가 책임”
전장연, 20일 만에 출근길 지하철 시위 재개

[이데일리 이소현 김윤정 기자] “나의 아들 현우야, 네가 시설에 맡겨 버려진 채 죽어가지 않도록 엄마는 삭발을 결심했다.” “꽃길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우혁이를 두고 갈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기꺼이 동참하겠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집단 삭발에 나선 부모는 이렇게 말하곤 차례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날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가 연 ‘1박2일 전국 집중 결의대회’에서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집단 삭발식을 했다.

1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촉구를 위해 삭발을 하고 있다.(사진=김윤정 기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국가가 책임져야”

24세 발달장애 1급인 손자를 위해 단상에 오른 김철구 할아버지(80)의 삭발을 시작으로 550여명의 집단 삭발이 이어졌다. 김씨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우리 마음을 엑스레이로 찍어볼 수 있다면 모두 시꺼먼 색일 것”이라며 “발달장애인을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가 만들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현장 참가자는 물론 코로나19 확진으로 격리된 이들은 온라인 삭발을 했고, 일부는 사전에 삭발해 영상을 통해 동참했다.

참가자들은 “삭발쯤이야, 목숨도 내놓을 각오”라며 머리칼을 잘랐다. 사연은 제각각이었다. 발달장애인 김정훈(32)씨는 “장애 당사자로서 권리를 알리기 위해 이번에 세 번째 삭발을 했다”고 했고, 거창에서 온 강민제(29) 사회복지사는 “일정상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발달장애 부모님들을 대신해 왔다”고 했다.

이날 주최 측 추산 2000여명이 운집해 현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으며, 오후 2시 5분에 시작한 삭발식은 1시간을 훌쩍 넘겼다.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도 “동료 의원들이 장애인 권리보장법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항의 의미로 삭발한 머리를 보여주겠다”고 현장에서 즉석 삭발을 했다.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삭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4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해 청와대 앞에서 209명이 삭발했다. 이후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 발표를 이끌었지만, 여전히 돌봄의 책임은 오롯이 가족이 부담하고 있다고 부모연대 측은 하소연한다.

실제로 국가 지원 부족 등에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도 3월 경기 시흥에서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20대 딸을 친모가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수원에선 친모가 지적 장애를 가진 7세 아들을 홀로 키우다 살해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주간 활동 지원체계 구축 △소득보장 체계 구축 △지원 고용 확대 및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 확대 △실효성 있는 통합교육 지원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발달장애인과 가족 500여 명이 19일 오후 청와대 인근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1박2일 집중 결의대회에서 단체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전장연, 출근길 지하철 하차 시위 재개

부모연대 외에도 이날 서울시내 곳곳에서 장애인단체의 시위가 열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도 서울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20일 만에 출근길 하차 시위를 재개, 장애인 이동권 등 권리보장을 요구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이날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에게 장애인이 지하철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에 어떻게 빠지는지 시연하겠다”며 동대입구역에서 하차하면서 오전 9시께부터 10분간 휠체어 바퀴를 전동차와 승강장 틈에 끼우고 시위했다. 이 탓에 10여분간 열차 운행이 지연됐다.

전장연이 지난해 말부터 지속한 지하철 출근 시위 등으로 이동권 보장 등 장애인 기본권 문제가 다시 환기됐지만, 아직 가시적인 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날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장애인 개인 예산제 도입 등 8대 공약을 발표했지만, 공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예산 규모와 확보 방안 등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독일은 ‘일상 조직화’ 개념을 도입해 성인이 된 장애인은 생활방식에 맞게 24시간 도움 받으며 자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이러한 지원 정책을 위해 지자체가 더 많은 예산과 권한을 갖고 중앙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등록장애인 수 추이(그래픽=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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