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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증적 정신장애를 기어이 예술로 승화시켰던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1929∼2026)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숨졌는데 27일 쿠사마스튜디오가 뒤늦은 별세 소식을 전하며 알려졌다. 쿠사마스튜디오는 “쿠사마가 마지막 날까지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전했다. 향년 97세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나 미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활동해온 쿠사마에게 붙는 수식은 대단히 화려하다. ‘땡땡이작가’ ‘호박작가’를 너머 ‘현대미술계 거장’이란 타이틀이 늘 따랐다. 한 시절을 풍미한 과거사에 묻히는 것을 거부하며 구순을 넘기고도 현역으로 활동해 ‘가장 비싼 생존작가’의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는 달리 단순치 않은 ‘스토리’가 그이를 따라다녔다. 유년시절부터 겪었다는 망상과 환각, 좀더 전문가적 진단으로는 ‘편집적 강박증, 공황장애’를 이겨내는 세월을 살아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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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가정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쿠사마는 열 살 무렵부터 발작·착란증세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 증세가 교육이 부족한 탓으로 아이를 닦달했고 이는 “평생 날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됐다. 그러다가 집안의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본 뒤 눈에 남은 잔상이 온 집안으로 번져나가는 경험을 하는데, 둥근 물방울 무늬로 변형된 그 환영은 쿠사마의 인생을 바꿔놨다. 그 전부를 화면에 옮기기 시작한 거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수많은 점들이 달려드는 환각은 계속됐고, 쿠사마는 일생을 걸고 고통으로 영감으로 모티프로 환각을 품어냈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한 뉴욕에서도, 1973년 일본으로 귀국한 이후까지도 달려드는 점들은 물방울과 무한그물 등의 작품에 바탕이 됐다.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일본관 단독 대표로 참가한 뒤 글로벌하게 영역을 넓혀갔다. 2010년대 들어선 뉴욕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등 유럽·미국의 유명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2017년에는 도쿄 신주쿠에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을 개관하고 이곳을 기반으로 말년까지 신작을 발표해왔다.
작품가도 나날이 치솟았다. 2019년 미국의 미술전문매체 아트넷이 분석한 100명의 작가 중 쿠사마는 ‘ 2010년대 작품값이 가장 크게 상승한 작가’ 순위에서 3위를 차지했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당시 10위를 기록했으니 그 영향력의 수위를 가늠할 수 있다. 세계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2022년 필립스 뉴욕에서 거래한 ‘무제(그물)’(1959)다. ‘무한그물’(Infinity Nets) 연작 중 한 점으로 1050만달러(당시 약 133억원)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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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얘기만도 아니다. 유독 한국 컬렉터가 열광한 일본 작가로 국내 미술시장에서도 가히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원화든 판화든 조각이든 매회 미술품 경매에서 빠지지 않을 만큼 쿠사마의 작품은 줄기차게 출품되고 있다.
그중 올해 3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팔린 ‘호박(MBOK)’(2015)이 작가 최고가를 찍었다. 104억 5000만원에 낙찰되며 국내 역대 낙찰가 2위 작품이자 한국 경매시장에서 거래된 쿠사마 작품을 통틀어 가장 비싼 그림이 됐다. 비단 단일작품만이 아니다. 2022년에는 국내 경매시장 전체에서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작가(합산 금액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해 거래된 쿠사마 작품의 낙찰총액은 276억여원으로 김환기·이우환 등 국내 거물 작가들까지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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