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피지컬 인공지능(AI)’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기로 한 가운데,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발판으로 로봇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을 통해 피지컬 AI 관련 예산을 올해 9000억원에서 내년 3조1000억원으로 3배 이상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제조와 스마트팩토리, 건설, 농업, 국방, 돌봄, 물류, 항만 등 8대 분야에서 AI와 로봇을 결합하는 실증사업에는 내년 5000억원이 투입되며, 전체 사업 규모는 2조6000억원에 달한다. 제조 현장에는 AI 솔루션과 국산 휴머노이드를 보급하고 중소 제조공장의 수작업 공정도 로봇 기반 자동화로 전환한다. 장기요양시설과 장애인 거주시설에는 국산 돌봄 로봇을 도입하며, 우체국 소포 분류·포장과 항만 하역·이송에도 로봇을 시범 적용한다. 연구·교육과 국방, 경찰·소방, 농식품 분야를 포함해 총 2000여대의 국산 AI 로봇이 투입될 예정이며, 제조 현장 숙련자의 경험을 데이터로 전환하는 AI 솔루션과 풀스택 AI 팩토리, 로봇 생태계 고도화에는 1조5000억원이 배정됐다.
이런 정부 정책과 맞물려 재계에서는 LG그룹의 로봇 사업 확장 행보가 두드러진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엔비디아 본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전략적 사업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식에는 권봉석 LG COO, 류재철 LG전자 대표,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 현신균 LG CNS 대표, 정수헌 LG사이언스파크 대표, 이홍락 LG AI연구원 공동 연구원장 등 주요 경영진이 총출동했다. 이 MOU는 양사가 올해 들어 최고경영진 회동과 기술 워크숍 등 8차례에 걸쳐 논의한 끝에 나온 결과로, 로봇과 AI 팩토리, 모빌리티를 3대 축으로 삼았다.
구체적인 일정도 제시됐다. 올해 안에 엔비디아 기술을 적용한 로봇 ‘LG 클로이드’가 미국 테네시 공장 생산라인에 투입되고, 내년 1분기에는 차세대 이족보행 휴머노이드가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엔비디아 ‘베라 루빈’ 기반 AI 팩토리 구축에도 나선다. 구 회장은 협약식에서 “양사의 협업이 속도를 내면서 AI 팩토리, 피지컬 AI, 모빌리티 분야에서 함께 할 과제가 명확해졌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약을 계기로 LG의 로봇 사업이 기존 가전 사업의 연장선을 넘어 그룹 전체 자원이 집중되는 핵심 사업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보스턴다이나믹스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앞세운 현대차·삼성전자에 비해 LG 로봇 사업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번에 구체적 목표와 일정이 담긴 협약이 나오면서 판도 변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구 회장의 로봇 행보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취임 이후 이어져 온 사업 재편의 연장선이다. 2018년 6월 취임 직후 LG는 로봇 연구 조직을 확대했고, 2019년에는 미국 로봇 스타트업 보사노바 로보틱스에 투자했다. 이후 LG전자는 2020년 로봇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시작했고, 2021년부터는 ‘LG 클로이(CLOi)’ 브랜드를 중심으로 상업용 로봇 사업을 확대해왔다. 최근에는 LG전자가 로보틱스사업센터를 신설하고 로봇의 핵심 구동 부품인 액추에이터 사업도 강화하는 한편, LG AI연구원은 산업 현장에 적용할 차세대 AI 기술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7월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로봇 지능 개발 기업 스킬드 AI 경영진과 만나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을 직접 참관하며 피지컬 AI 기술의 산업 적용 가능성을 점검하기도 했다.
정부의 대규모 예산 투입과 LG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투자 확대가 맞물리면서, 피지컬 AI가 제조업 생산성 혁신과 인구 감소 대응이라는 국가적 과제 해결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와 별개로 독자 AI 모델 개발과 ‘모두의 AI’ 구현을 위한 예산도 올해 8조4000억원에서 내년 12조2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으며, 이 중 5조2000억원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독자 AI 모델 개발에,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GPU 1만장 확보에도 투입된다.
<마켓잉크 장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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