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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시조가 K굿즈로…29CM, 한글 문화유산 세계에 잇는다[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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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애 기자I 2026.10.30 15: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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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시조가 침구로, 한글 자음은 생활용품 변신
국립한글박물관과 협업…21개 브랜드 전통 재해석
컬처 거래액 67%↑…K유산·중소브랜드 잇는 플랫폼 확장
이구홈 서울숲 외국인 매출비중 50% 넘어…판로 확대

[이데일리 박지애 기자] “300년 전 시조에 담긴 그리움이 이불과 조명으로 재탄생했습니다.”

29일 서울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29CM의 ‘모든 마음 곁에, 한글’ 전시에서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침구(왼쪽)와 옛 시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글 전시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사진=박지애 기자)
29일 서울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29CM의 ‘모든 마음 곁에, 한글’ 전시에서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침구(왼쪽)와 옛 시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글 전시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사진=박지애 기자)
29일 서울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코사이어티. 전시장에 들어서자 수묵화처럼 은은하게 번진 초승달 무늬의 침구가 눈길을 끌었다. 언뜻 보면 감각적인 디자인의 침구 제품이지만 그 안에는 조선시대 시인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 담겨 있었다. 임을 그리워하며 긴 겨울밤을 보내는 애틋한 마음을 초승달과 먹이 번지는 듯한 문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자 배꽃과 낙엽이 그려진 조명과 티슈 커버가 놓여 있었다. 시조 ‘이화우 흩뿌릴 제’에 담긴 이별과 그리움의 정서를 현대적인 생활용품으로 옮겨 놓은 제품이다. 한글 자음 ‘ㅂ’과 ‘ㅎ’의 형태를 활용한 연필꽂이와 소품 보관함도 눈에 띄었다. 고전 문학 속 노랫말과 글자의 형태가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하는 디자인 상품으로 변신한 셈이다.

300년 전 시조, 현대적 디자인 입고 생활용품으로

이날 찾은 곳은 무신사가 운영하는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 29CM가 국립한글박물관, 세종시문화관광재단과 함께 마련한 ‘모든 마음 곁에, 한글’ 전시다. 전시의 출발점은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보물 ‘청구영언’이다. 1728년 김천택이 엮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노랫말 모음집으로, 총 580수의 시조가 담겨 있다. 29CM는 이 가운데 25편을 선정해 낭만·사랑·충만·개성 등 네 가지 정서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는 29CM 입점 브랜드 13곳을 포함해 총 21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참여했다. 이들은 시조 한 편을 골라 각자의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한 침구와 조명, 문구류 등 다양한 상품을 선보였다. 한글을 제품 표면에 새기거나 전통 문양을 단순히 차용하는 데서 벗어나 시조에 담긴 감정과 이야기를 상품에 녹여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관람객이 직접 한글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했다. 발광다이오드(LED) 인터랙티브 월 앞에 다가서자 흐릿하게 떠다니던 시조의 글자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다른 공간에서는 가야금과 단소, 북의 소리를 조합해 시조에 자신만의 선율을 입힐 수 있었다. 책 속에서 읽던 옛 노랫말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체험 콘텐츠로 확장한 것이다.

29CM 관계자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한글을 단순히 장식적으로 활용하기보다 시조에 담긴 사랑과 그리움, 이별 등 과거 사람들의 감정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했다”며 “300년 전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갔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9일 서울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29CM의 ‘모든 마음 곁에, 한글’ 전시 초입. (사진=박지애 기자)
29일 서울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29CM의 ‘모든 마음 곁에, 한글’ 전시 초입. (사진=박지애 기자)
K헤리티지 열풍 타고…중소 브랜드와 외국인 소비자 잇는 가교

이 같은 시도는 최근 유통업계에서 주목받는 ‘K헤리티지’ 소비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상품인 ‘뮷즈’가 인기를 끄는 등 전통문화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입힌 상품이 새로운 소비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특히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일상적인 제품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념품이 될 수 있다.

29CM가 주목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문화유산과 디자인 역량을 갖춘 국내 중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연결하고, 이를 국내외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가교 역할이다. 실제 29CM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라이프스타일 매장 ‘이구홈 서울숲’에서는 전체 취급 브랜드의 약 80%가 국내 브랜드 임에도 외국인의 월 매출 비중이 50%를 웃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29CM 관계자는 “국내 중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은 우수한 디자인 역량을 갖추고 있어도 인지도나 인력, 사업 규모 등의 제약으로 문화기관과의 협업이나 새로운 상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29CM가 문화유산과 국내 브랜드를 연결해 상품 개발과 고객 접점 확대를 지원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한국 브랜드의 경쟁력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29일 서울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29CM의 ‘모든 마음 곁에, 한글’ 전시에서 한글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상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박지애 기자)
29일 서울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29CM의 ‘모든 마음 곁에, 한글’ 전시에서 한글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상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박지애 기자)
29CM의 이 같은 행보에는 플랫폼의 사업 영역 확장 전략도 자리하고 있다. 패션과 인테리어 상품을 판매하는 데서 나아가 공연과 전시, 도서 등 고객의 취향 전반을 제안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관련 사업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29CM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공연·전시·도서·음반 등을 포함한 컬처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67% 이상 증가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성장한 규모다. 올해 1~9월 공연·전시 티켓 판매 상품 수도 전년 동기 대비 59% 늘었다.

29CM는 앞서 광주비엔날레와 협업해 전시 티켓과 공식 상품을 선보였고, 서울디자인재단과 함께 DDP디자인페어를 개최하는 등 문화예술 기관과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브랜드 슬로건을 ‘모든 취향 곁에’로 재정비하고 자체 서체 ‘29 에디토리얼’을 공개하는 등 상품 판매를 넘어 문화적 경험까지 제안하는 플랫폼으로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29CM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300년 전 한글 문화유산을 현대적인 상품으로 재해석하고, 국내 중소 브랜드의 판로 확대와 외국인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K헤리티지와 국내 디자인 브랜드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1월 1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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