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철학을 공유하는 두 수장이 이끄는 한미 통화정책도 닮은꼴이 되고 있다. 두 중앙은행은 이번 달 나란히 ‘인상 후 동결’을 택했다. 금리를 올린 뒤 숨을 고르고 있지만, 물가 목표를 강조하면서 긴축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신호는 분명히 했다. 두 중앙은행이 모두 다음 인상 시점을 저울질하며 데이터를 강조하면서 물가 지표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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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은 2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3.75~4.00%로 동결했다. 9월 0.25%포인트 인상 이후 첫 동결이다. 투표권을 가진 위원 12명 가운데 2명은 인상을 주장하며 반대표를 던졌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회의 결과를 미리 판단하지 않는다”며 12월 인상 여부에 말을 아꼈지만, “인플레이션은 너무 높다”고 못 박았다. 시장은 12월 인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보다 앞선 22일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했다. 7월과 8월 연속 인상 이후 이번 인상기 들어 첫 숨 고르기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물가가 목표 수준에 안정적으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대응하겠다”며, 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두 나라가 긴축을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에는 인공지능(AI) 투자가 이끄는 강한 성장세가 있다. 연준은 이번 성명에서 경기 판단을 ‘견조한 확장’에서 ‘강한 확장’으로 올렸다. 한국의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0% 늘어 한은 전망치(0.3%)의 세 배를 웃돌았다. 4분기에 성장이 멈춰도 연간 3.6% 성장이 가능하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 성장센,ㄴ AI라는 같은 고리로 연결돼 있다. 워시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생각보다 한국 경제에 훨씬 더 관심을 둔다”며 “이번 기술 급성장의 공급원 상당수가 일본과 한국에서 온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를 보면 배와 비행기에 무엇이 실려 미국으로 들어오는지 알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의 AI 투자 붐이 한국의 반도체 수출을 끌어올리고, 이것이 다시 양국의 강한 성장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유럽의 사정은 다르다. AI 사이클에 올라타지 못한데다 중동 전쟁발 고유가라는 충격까지 받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6월과 9월 금리를 올렸지만 지난달 유로존 물가는 3.8%까지 올랐고, 올해 성장률 전망은 0.9%에 그친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성장을 제약할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 처했다. 소위 정책 변수 간 상충관계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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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긴축의 걸림돌이 상대적으로 적다. 10월 1~20일 수출은 616억달러로 1년 전보다 105.4% 늘었다. 9월 15~64세 고용률은 70.6%로 0.2%포인트 올랐고 실업률은 2.0%에 그쳤다. 수도권 집값과 가계대출 증가세, 여전히 과거 평균 대비 높은 원·달러 환율도 금융안정 측면에서 금리 인상의 명분이 된다. 신 총재가 취임 직후부터 “한국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통화정책 조정에 장애물이 적다”고 강조한 이유다.
‘직진’ 스타일의 신 총재가 취임한 것도 한몫했다. 한은은 연준보다 두 달 앞선 7월 3년 6개월 만에 금리를 올린 데 이어 8월 연속 인상으로 선제 대응에 나섰다. 신 총재는 이례적인 연속 인상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을 인용해 “호미를 든 것”이라고 했다.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1∼9월 15세 이상 취업자 수는 월평균으로 전년 동기보다 약 11만7000명 늘었다. 1∼9월 기준으로 2020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적은 증가 폭이자 정부 예상치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특히 청년 고용 상황은 심각하다. 9월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4.0%로 1.1%포인트 떨어지며 29개월 연속 내렸다. 청년 취업자는 14만 7000명 줄어 47개월째 감소세다. 3분기 민간소비는 0.2% 감소해 2022년 4분기 이후 처음 뒷걸음질했다. 반도체 기업 중심의 수출 호조가 경제 전반으로 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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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중앙은행의 수장이 모두 인플레이션 목표(2%)치를 강조하면서 “앞으로 나올 지표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시장의 시선은 물가 지표로 쏠린다.
미국은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7%로 높은 데다, 물가와 고용이라는 두 책무를 함께 지고 있어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하다. 워시 의장도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은 물가 수준은 미국보다 낮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의 성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9월 국내 소비자물가는 2.9%, 근원물가는 2.8% 올라 목표(2%)를 웃돌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 국면에서도 석유 최고가격제 등 정부 정책 노력으로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변수는 ‘반도체 머니’다. 3분기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1년 전보다 18.8% 늘어 48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가격 급등으로 불어난 기업 이익은 시차를 두고 법인세와 배당, 성과급을 거쳐 정부와 가계로 흘러간다. 8월 법인세 중간예납을 시작으로 연말연초에는 배당과 성과급이 이어지고, 내년에는 정부 예산안 기준 역대 최대인 820조9000억원의 재정 집행이 시작된다. 올해 1분기 명목임금 상승률 3.4% 가운데 1.3%포인트가 IT 부문 성과급에서 나왔다는 한은 분석도 있다.
늘어난 소득이 아직 소비로 번지지 않았을 뿐, 수요 측 물가 압력이 커질 길은 열려 있는 셈이다. 한은은 내수 파급이 예산 집행과 성과급 지급이 몰리는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 신 총재도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요 쪽의 압력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다음 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선제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소득 증가가 소비와 물가로 번지기 전에 기대인플레이션을 묶고 수요를 둔화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다. 11월 금통위는 연준의 12월 회의보다 먼저 열리는 만큼, 한은이 금리를 올리면 이번에도 연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게 된다. 남은 관문은 다음 달 초 발표되는 10월 소비자물가와 한은의 수정 경제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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