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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한국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으로 감독상을 받으면서 감개무량한 소감을 말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멕시코 출신이다. 그의 국적 언급은 반(反)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항변으로 읽혔다. 현장에 있었던 다양한 국적 출신의 영화인들은 박수로 그의 말에 공감했다.
올해 아카데미는 미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영화 시상식답게 작품으로 트럼프 체제 하의 미국 사회에 비판의 시선을 보냈고 저항의 말을 내놨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감독상뿐 아니라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오스카가 선택한 ‘올해의 영화’가 됐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언어 장애를 가진 여성과 괴생명체의 판타지 러브스토리다. 이민자 출신 감독이 장애를 가진 여성을 서사의 중심으로 내세워 보편적 가치인 사랑을 말한다. 그 안에서 인종문제, 성소수자문제도 함께 얘기한다. 그래서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의 수상은 현 미국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쓰리 빌보드’도 마찬가지다.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나선 한 여성의 이야기 안에서 흑인 차별 문제를 다룬다. 각본상 수상작 ‘겟 아웃’도 흑인 차별 문제를 공포로 풀어낸 작품이며, 장편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수상작 ‘코코’는 트럼프 정부와 이민자 정책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각색상을 받은 ‘콜 미 바이 더 유어 네임’은 동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다.
아카데미는 이처럼 여성·장애인·흑인·성소수자 등 사회에서 각종 차별을 겪고 있는 약자 또는 소수자의 이야기에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같은 트럼프에 대한 직접적인 저격 발언은 없었다. 대신 다양성을 반대하고 독단으로 치닫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은근하게 꼬집었다.
페미니즘도 다양성 차원에서 재조명됐다. 지난해 10월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으로 시작된 여성 해방 운동인 ‘미투’ ‘타임즈업’은 아카데미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문제였다. ‘백인들의 잔치’라는 인종 차별 비판과 함께 여성 영화인에 대한 차별로도 거센 비판을 받았다.
올해는 수상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지만 여성 영화인들이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시대의 변화에 동참했다. ‘레이디 버드’의 그레타 거윅이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여성이 감독상 후보에 오른 것은 8년 만이다), ‘머드바운드’의 레이첼 모리슨은 여성 최초로 촬영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감독상 시상자로 나선 엠마 스톤은 “남성 후보 네 명과 그레타 거윅”으로 후보자들을 소개하며 여성 감독의 노미네이트에 의미를 부여했다.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자신과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뿐 아니라 부문별 후보에 오른 감독 촬영감독 프로듀서 제작자 등 모든 여성 영화인들을 일으켜세워 수상의 기쁨을 함께했다. 이밖에도 시상에 나선 여성 영화인들은 “우리 앞의 여정은 길지만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 “60년대부터 정치 과학 문화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가 있었고 지금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변화가 일고 있다” 등으로 변화를 지지하고 기대했다. 1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많은 여성 배우들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미투’ 운동에 나섰다. 이제 변화는 시대의 흐름이 됐다고 받아들인 듯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검은 드레스 대신 남성들의 우월적 지위 독점 시대의 끝을 알리는 캠페인인 ‘타임즈업’(Time's Up) 배지를 걸고 조용히 ‘새 시대’를 맞았다.
올해 시상식은 지난해 수상 번복 오점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발견됐다. 아카데미는 지난해 작품상을 발표하면서 수상작을 번복하는 초유의 상태로 논란이 일었다. 이를 의식한 호스트 지미 키멜은 “수상자는 호명되면 바로 일어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작품상에 호명된 후 봉투의 이름을 재차 확인하는 제스처로 웃음을 자아냈다. 수상자 명단을 적은 봉투도 지난해에 비해 커졌다.
코미디언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지미 키멜은 이례적으로 지난해 이어 올해 2년 연속으로 아카데미 진행을 맡았다. 재치 있는 입담과 시류에 대한 풍자가 여전했다. 지미 키멜은 시상식에서 “우리는 하비 와인스타인을 쫓아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다”라는 말로 아카데미의 새 장을 예고했다.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상이다. 올해는 90회로 의미를 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