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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가 29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이 작품은 달리기 하나로 전국을 제패한 육상스타 나애리와 달리기 천재 하니가 고등학생이 되어 ‘스트릿 경기’(S런)에 참가하며 펼쳐지는 경쟁과 성장을 담아낸 스포츠 애니메이션이다.
먼저 눈이 즐겁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한강공원, 홍대 젊음의 거리, 남산타워, 이태원 경리단길, 강남 교보타워 등 서울의 상징적 장소들이 ‘S런’ 코스로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달리기 액션은 도시의 리듬과 정확히 맞물린다. 벽을 타고, 난간을 디디고, 계단과 다리를 가르는 동선이 살아 있어 관객의 호흡까지 끌어당긴다. 특히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는 컷 타이밍과 질주·감속의 호흡, 공간 전환의 리듬이 정점으로 이르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레이싱 연출의 박진감만 놓고 보면 “한국 애니메이션이 맞나” 싶을 정도로, ‘F1 더 무비’에 견줄 만한 현장감과 속도감을 구현했다. 실제 상품과 브랜드를 활용한 PPL(간접광고)도 과하지 않게 현실감을 보태는 장치로 기능한다.
음악은 서사를 강하게 밀어 올린다. 노브레인의 황현성이 음악감독을 맡고, 터치드 윤민과 류수정 등이 참여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장면의 감정선을 정확히 받쳐 준다. 메인 테마 ‘소실점’은 경쟁을 넘어 각자의 목표점으로 뻗어가는 인물들의 궤적을 선명하게 잡아주고, 엔딩 넘버 ‘빛나는 땀방울’은 레이스의 여운을 맑게 정리한다. ‘케데헌’에 ‘골든’이 있다면,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에는 ‘소실점’과 ‘빛나는 땀방울’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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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힘은 캐릭터의 변주에서 나온다. ‘달려라 하니’의 첫 극장판임에도 나애리를 사실상 전면에 세운 선택이 대담하고, 결과적으로 유효했다. TV 시리즈에서 ‘악역’으로 소비되던 나애리는 이번 작품에서 왜 냉정할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는지가 차근차근 드러난다. 일등 지상주의를 정면으로 비틀며 성장을 통해 자아를 모색하는 과정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니는 초반 감정의 진폭이 커 때로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듯 거칠어 보이지만, 달리기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로 나아가는 인물로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두 사람이 경쟁에서 이해로, 이해에서 연대로 넘어가는 감정 곡선은 오늘날 관객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하니의 든든한 지원군 창수,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홍두깨 코치, 새 라이벌로 부상한 주나비 등 조연들의 존재감도 뚜렷하다. 그중에서도 홍두깨 코치의 피앙세 고은애의 존재감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주연·조연 캐릭터의 팀플레이가 액션과 서사의 밀도를 동시에 끌어올린 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국 애니메이션은 세련되지 못하다’는 편견을 과감히 깬다. 날렵해진 작화와 현대적인 색감, 배경·의상·소품·질주 동선의 디테일의 촘촘함이 돋보인다. 40년 전 TV 앞에서 하니를 만났던 세대와 지금 처음 극장에서 하니를 만나는 세대가 같은 장면을 서로 다른 이유로 즐길 수 있게 했다. ‘케데헌’의 음악과 한국 로케이션, ‘F1 더 무비’의 스릴과 박진감 등 장점만 결합한, 웰메이드 K애니메이션의 탄생이다. 10월 7일 개봉. 허정수 감독 연출. 러닝타임 91분.